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많을 계절이다. 물론 전망 좋은 호수나 바다가 낫겠다. 하지만 돈도 많이 들고, 한나절을 투자하기도 수고스럽다. 또 너무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은 사람들에게 떠밀려, 편안한 식사조차 신경 쓰인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철원 여행을 추천한다. 철원이라고 하면 ‘멀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철원에 한 번도 가보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서울에서 의정부, 포천을 지나면 바로 철원이다. 인근에 대진대학교가 있어, 강남역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도 있다.
철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한탄강 줄기와 고석정을 만난다. 고석정은 수려한 풍광과 의적 임꺽정의 활약지로, 나름 지역에서 유명하다. 1인당 4,000원을 내고 즐기는 통통배 유람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시간이 된다면 순담계곡, 직탕폭포와 함께 한탄강 3종 세트로 관광하면 좋겠다. 거기까지 갔는데 한 곳만 보고 돌아오기엔 좀 아쉽다. 그것이 사람 마음이다.
고석정은 철원 8경 중 하나다. 이곳에는 거대한 기암과 정자가 있다. 일대는 현무암으로 둘러싸여 천연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고석정 중앙에 있는 10미터 높이의 기암봉은 임꺽정이 은신하며 관군과 싸운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잘 정돈된 계단을 따라 강가로 내려가면 입부터 딱 벌어진다. 작은 모래알이 발밑에서 부서지며 묘한 촉감을 선사한다. 또 사방을 둘러보면 기암괴석과 폭포, 나무들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져 눈을 황홀하게 한다. 조물주가 아니면 만들어 낼 수 없는 풍경이다.
굽이 솟아오는 절벽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절벽 사이 사행천을 따라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너무도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끝을 모르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현실의 고통을 잠시 놓는다. 감성에 눈을 뜨면서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현실을 인식하면서 암담한 싸움과 마주해야 했던 과거의 이야기들을 작은 종이배에 띄어 보낸다. 아주 사소한 일상의 짐까지 모두 다. 그래도 좋은 일들이 있어 살만 했고, 비록 가난했어도 행복했다.
고석정은 가볍고 유연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들려 마음을 비우고 가기 딱 좋다. 사람으로 얘기하자면 서민적이지만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까. 이제는 좀 알려지기 시작해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편히 앉아 쉴 만한 장소가 많다.
강은 언제나 흘렀다. 숙명처럼 바다를 향했다. 삶도 비슷하다. 태어나면 숙명처럼 죽음을 향해 간다. 문제는 어떻게 흘러가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저 강물처럼 생명수로, 자양분로 살아가는 게 좋다. 고석정에 서서 일생동안 아끼고 사랑하며 가꿔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철원은 안보관광지라는 선입견이 강해 아름다운 명소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철원에는 전적지, 땅굴, 평화전망대, 백마고지 위령비, 노동당사 같은 안보관광지가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문화유적과 절경도 많다. 도피안사, 동승읍 마애불상 같은 유적지를 비롯해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 삼부연 폭포, 금학산, 복주산 휴양림,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쇠둘레평화누리길 같은 자연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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