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죄인이다. 언젠가 죗값을 받을 것이다. 카르마(선악의 결과)다. 끝없는 탐욕은 괴로움을 잉태한다. 하지만 탐욕은 혼자만의 괴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탐욕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망친다. 그래서 탐욕은 죄고, 삼성은 죄인이다. 탐욕은 사람을 성공으로도 이끌지만 실패로도 인도한다. 스스로 탐욕을 조정하느냐, 탐욕에 조정 당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다큐 <탐욕의 제국>을 보면 삼성은 영락없이 탐욕에 조정 당한다. 인간이 없다. 박애가 없다. 평화가 없다. 과연 삼성은 무엇을, 얼마나 채우려고 하는 것일까. <탐욕의 제국>은 삼성의 탐욕 때문에 망가지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로테스크한 반도체 공정 라인. 하루 일과가 빼곡히 적힌 노트. 뭔가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걸로 담갔다 뺐다, 담갔다 뺐다 하는 거예요.” “감광액을 들고 가서 직접 바꿔줘야 해요.” 시작부터 머리가 띵하다. 잠시 감각을 일깨우는 건 하트뿐이다. 낭랑한 여자 목소리. “예쁘죠.” 하얀 방진복을 입으면 사람의 눈 부분만 보인다. 여자들은 이 부분만이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다. 하트 모양을 만들기 위해 모자를 몇 번이나 고쳐 쓴다. 화면은 다시 하얀 방진복과 ‘삼성 순환식 훈련장’으로 이어진다. 매미처럼 나무에 매달려 맴맴맴 우는 훈련까지 시킨 삼성. “자존심이 상했죠.” 삼성은 인간의 자존감을 빼앗는다. 너희는 노예다. 인간이 아니라 그 이하의 생명체다. 돈에 복종하라.
이윤정.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다. 처음에는 안 그랬다. “잘 배워서 잘 해봐야지.” 그러나 그녀는 병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음속에 삼성에 대한 원망만 키운다. MRI를 찍으러 병원에 갔다. 병원 안이 답답하다. 밖에 나와 바람을 쐰다. 잠시라도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고 싶다. 예전에는 바깥 풍경이 그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야 세상을 보게 됐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의 육신을 저 세상으로 내몰았다. 윤정 양은 회사를 그만 둔 뒤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사망했다. 그녀는 반도체 칩이 고온에서 잘 견디는지 검사하는 일을 했다. 그녀는 일할 때 항상 역겨운 냄새가 났고, 미세한 검은 분진이 날렸다고 했다. 그녀의 노제는 삼성 직원들의 방해와 압력에도, 삼성 건물 앞 아스팔트에서 치러졌다. 물론 장의차는 건물 내부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과 소송도 불사했다. 하지만 재판장에는 삼성이 고용한 변호사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과 면담도 요청했다. 하지만 이사장은 도망갔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를 위한 곳인가? 노동자를 배척하고 사업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곳인가?” 유미 양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묻는다. 유미 양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다. 갑자기 병이 악화되자 아버지가 몰던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던 중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삼성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수없이 죽었다. 지금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 삼성은 이들의 병을 개인질병이라고 주장하고, 근로복지공단 역시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다. 한혜경.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했다. 그녀는 제대로 설 수 없다. 제대로 말도 못한다. 겉으로만 봐도 환자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증거가 없다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혜경 양의 어머니가 재판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우수 삼성전자 부사장에 항의 반, 하소연 반 한다. 최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눈도 마주치려하지 않고 물만 마신다. 애꿎은 안경집만 매만지며 입술을 깨문다. 삼성은 “리플로어 설비에서 고온 작업이 끝난 PCB 판넬이 다시 자동으로……”라고 했지만 혜경 양은 “리플로어 설비에 PCB 판넬이 들어가기 전에 1차 외관검사를 실시하고 리플로어 설비에서 나온 PCB 판넬을 다시……”라고 말한다. 그러다 몸에 이상해졌고 병이 생겼다. 그런데도 왜 증거가 없는 것일까? <탐욕의 제국>은 그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삼성반도체, 삼성전기, 삼성SDI 등에서 일하다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작업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동그란 웨이퍼를 깨뜨리고, 깨뜨린 칩을 화약약품으로 벗겨내요. 끓는 용액에 칩을 넣으면 칩이 얇게 새까만 막이 벗겨지는 게 보여요. 발열질산에 담그면 더 세차게 끓어오르면서 노란 연기가 나요.” “트로톤 엑스 100을 옛날에 많이 썼는데, 삼성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요. 트로톤 엑스 100은 산화에틸렌 덩어리예요. 직접적으로 백혈병, 유방암 발병 물질이에요.” “수경 언니는 몇 달 전에 애기를 낳고 바로 백혈병 걸려서 한 달 두 달 치료하가다 죽었어요.” “살이 많이 빠지고, 기운이 없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았어요. 그런데 임신이 안 되는 거예요. 시험관 아기를 하다가 작년에 잠깐 임신이 됐어요. 하지만 육모성 종양으로 발전돼서.” “멍이 자주 들었고요. 먹으면 토했어요. 병원에 가니 피가 이상하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큰 병원 가서 백혈병 판정 받고 엄청 울었어요.”
2013년 1월 삼성반도체 공장탱크에 저장돼있던 불산 용액이 누출됐다. 사고를 수습하던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불산은 피부에 심한 화상을 입히거나 피부 속에 침투해 뼈를 녹인다. 가스 상태로 흡입하면 폐조직이 괴사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불산을 포함해 500개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18년 동안 불산을 직접 다뤘다는 익명의 제보자. “방제복 이런 거 얘기 하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어요. 방진복만 입고 속장갑, 비닐장갑만 끼고 일했어요. 그런데도 손끝이 썩어 들어가 손톱을 뺐습니다.”
오랜만에 웃는다. “본관이 소리가 잘 모여. 소리가 벽에 부딪쳐서 오니까 크게 들려. 기흥공장은 허허벌판이니까 아무리 크게 소리 질러도 안 들려.” “어린 여사원이 음료수 주면서 ‘드시고 하세요’라고 하더라고요. 마이크에 대고 일부러 ‘감사합니다’라고 했죠. 니들 봐라. 이렇게 호응이 있다고 보여주려고.” 삼성과 싸웠던 후일담을 나누는 것도 잠시, <탐욕의 제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걱정스럽게 관찰한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학생들의 얼굴은 밝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다. 삼성 같은 대기업에 가면 월급도 많이 나온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불공정에도 자신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돈이라면 쩔쩔 매고, 진실도 거짓으로 둔갑시킨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도 모두 삼성 권력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 영화는 학생들의 꿈을 산산이 깬다. “몸이 안 좋으면 꿈에 반도체 공장을 헤매요. 하얀 가운 입고, 공정 라인에 들어가 일하고 있어요. 사람들도 하얀 방진복 입고 기계 앞에 한 명씩 서 있는 거예요. 도망 나오는 꿈. 여기 안 왔어야 하는데 그런 꿈.”
1인 시위, 기자회견, 선전전, 면담요청, 항의방문, 집회. 재판 등 할 건 다했다. 하지만 삼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보는 삼성이 이렇습니다. 고인에게 최소한의 조의조차 표하지 않는…….” 삼성 직원들은 막무가내다. 밀치고, 막고, 몰아내고, 겁박한다. 연민도, 아주 사소한 정도 없다. “이건희 나와, 사람을 몇 십 명을 죽여 놓고, 입 꼭 다물고 있어.”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친다. 자기 일이 아니니 흘겨보고 만다.
<탐욕의제국>은 삼성을 직설적으로 까발린다. “저 미친놈들. 저 미친놈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모순을 겨냥한다. “직업병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정부도 할 만큼 했다.” 허공에 공허한 목소리만 맴돈다.
<탐욕의제국>은 故 황유미 양의 기일인 3월 6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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