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06. 검소한 천하장사

이동권 2021. 11. 15. 13:37

나무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경대

 

강경대는 어렸을 때부터 체격이 남달랐다. 덩치도 좋고, 키도 커서 식당에 가면 어른 3인분을 해치웠다. 음식을 가리는 일도 없어서 해주면 해주는 대로, 사주면 사주는 대로 맛있게 먹었다. 맛 좋은 음식 냄새가 나면 냉큼 식탁에 앉아 코를 벌름거리며 어머니를 채근했다. 어머니는 경대의 이런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피로가 쌓일 틈이 없었다.


때로는 경대가 한 번에 먹는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 키우는 맛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정원에 가둬놓고 잘 손질해서 어여쁘게만 키우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자라도록 거름을 적당하게 주는 것이 화초에 더 좋듯이, 잘 먹고 소화만 잘 시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경대는 체격이 좋아서 그런지, 타고날 때부터 힘도 장사였다. 어머니가 무거운 물건을 옮겨달라고 하면 한 번에 번쩍 들어서 옮겨주었고, 콧수염이 거뭇거뭇해져서는 운동선수였던 아버지도 힘으로 거뜬히 이겼다. 


게다가 경대는 마치 섬세한 수공업자처럼 조심히 힘을 써서 깨질 위험이 있거나 중요한 물건을 나를 때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 


경대는 집안의 궂은일도 도맡아 했다. 특히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을 못 봤다. 어머니가 설거지를 할 때면 자기가 하겠다고 고무장갑을 빼앗았고, 집안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자기가 도울 일이 생기면 알아서 앞장섰다.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해 보이면 어깨도 주물러 드렸다. 시키는 일이 아니었다. 도움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하는 일이었고, 부모님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자식은 부모의 표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경대의 이러한 성품은 어머니를 꼭 닮았다. 성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만 아니라 돈 쓰는 일까지 그러했다. 


경대는 아버지가 도자기 그릇에다 동전을 모아놓으면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갔다. 분수껏 사용했고, 절제 있게 행동했다. 가끔 군것질도 하고 싶고, 오락실도 가고 싶고, 장난감도 사고 싶어 돈이 필요했겠지만, 경대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항상 통장에 돈을 모았고, 알뜰하게 사용했다. 그러고는 너스레를 떨며 웃곤 했다.


“집이 제일 좋아요. 엄마가 해준 음식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경대는 고등학교 때 키가 185cm, 몸무게는 90kg에 달했다. 체구가 크다 보니 옷이나 양말이 잘 떨어지고, 잘 늘어났다. 그래도 경대는 쉽게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신발 속으로 양말이 자꾸 말려 들어가고 엄지발가락 부분에 구멍이 나도 새 양말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구멍 난 양말을 바늘로 꿰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곤 했다.


“사다줄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 떨어졌는데?”
“꿰매면 괜찮아요.”
“이리 줘봐. 엄마가 꿰매 줄게.”
“제가 할 수 있어요. 피곤하실 텐데 쉬세요.”


경대는 침착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다독이듯이 말했다.


어머니는 필요하다 싶으면 알아서 옷을 사줬다. 경대가 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대는 어머니가 아무 옷이나 사줘도 잘 입었다. 단 한 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한 적이 없었다. 경대는 늘 고마워했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엄마, 좋은 것 사오셨네요. 부모님 잘 만나서 제가 호강하네요. 늘 감사해요.”


경대 친구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고가이거나 메이커가 있는 옷을 사달라고 조르는 통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경대는 실속을 챙겼다. 유행에 민감하고, 자랑삼아서라도 좋은 옷을 입고 싶은 나이였지만 경대는 달랐다. 


어머니는 이런 경대의 행동이 의아해 묻곤 했다.


“비싼 거 하나 사다줄까?” 
“돈으로 주세요. 동대문에 가면 싼 것 많아요.”
“동대문까지 가는 길이 고생이겠다. 백화점에서 사다 줄게.”
“친구들하고 같이 가면 재밌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경대의 성품은 우람한 체격에 맞지 않게 선량하고 교양이 넘쳤다. 항상 정다운 말과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경대는 한창 극성맞고 반항심이 넘칠 시기에도 부모님의 말씀에 거스름 없이 순하게 따랐다. 피 말리는 대학 입시 때문에 불안이 찾아올 때에도, 영원하지 않은 삶이 문득 생각날 때에도, 문학 작품에 심취해 슬픔에 잠겼을 때에도, 친구들과의 우정 때문에 괴로운 일이 생길 때에도 경대는 늘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며 부모님께 상의하고, 충고를 받아들였다.  


경대는 집에서 대들보였다. 집안의 정신적인 기둥이면서 웃음을 퍼트리는 전도사이기도 했다. 아니, 자신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을 아름답고 행복한 것으로 바꾸는 재주까지 있었다. 


경대는 두 살 터울인 누나의 얘기도 잘 들었다. 누나를 끔찍하게 아꼈다. 부모님보다도 누나의 말을 더 따르면서 집안의 화목을 이끌었다. 


하지만 경대는 아들만 생각하는 어머니 때문에 누나에게 항상 미안해했다.

 
“경대야. 옷 사 왔다. 입어봐라.”
“고마워요. 엄마.”


경대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했는지 눈빛에는 고민이 가득했다. 


“엄마. 제 옷만 사 오셨네요?”
“누나 옷은 나중에 사줄게.”
“누나도 챙겨주세요. 엄마가 저만 챙기면 제가 누나한테 미안하잖아요.”


어머니는 작은 것까지 누나를 챙기는 경대가 대견했다. 한편으로는 경대의 마음을 몰라준 것 같아서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알았어. 아들. 다음에는 누나 것도 같이 살게.”


경대는 그제야 직성이 풀렸는지 환하게 웃으며 어머니를 안았다.


가족들은 경대의 모든 것을 사랑했고, 경대는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뭐라고 나무랄 데 없이 온유하고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토바이에 앉아 활짝 웃고 있는 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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