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07. 예쁘고 인사 잘하는 어린이

이동권 2021. 11. 15. 13:40

예쁜 어린이 선발 대회에 참가한 경대

강경대는 이목구비가 곱상한 데다 하얀 얼굴에 살이 토실토실 올라 보기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예뻤다. 긴 단발머리에 가느다란 머리핀을 꽂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모두 여자아이로 착각할 정도였다.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앉아 있을 때면 어른들은 흡족한 듯 바라보면서 한 마디씩 했다. 


“그 놈 참 예쁘게 생겼다.”


경대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신문에 예쁜 어린이를 선발한다는 공고가 났다. 경대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어머니를 끈덕지게 졸랐다.


“엄마, 저 예쁜 어린이 선발 대회에 나갈게요.”
“대회에 나가겠다고?”


어머니는 달래는 투로 말했다. 


“자신 있어요. 저처럼 예쁜 아들이 나가야죠. 상 받을 자신 있어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식이 나간다고 하니 말릴 수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어정쩡했다. 사실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예쁜 외모를 자랑하는 대회에서 별로 배울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이 대회가 나쁜 것도,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신만만했던 경대는 떼어 놓은 당상처럼 ‘예쁜 어린이’로 선발됐다. 1등이었다. 그러자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만은 반대했다. 굳이 방송에 나갈 것까지는 없다고 적당하게 선을 그었다. 그때 어머니는 경대가 방송에 출연했으면 연기를 하던지, 방송과 관계된 일을 시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상상을 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이 틀리지 않아 토를 달지 않았다. 


경대는 초등학교 입학식 때 예쁜 외모 탓에 웃지 못할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선생님이 예쁘장하고 하얀 피부의 경대를 여자 아이로 착각하고 여자 줄에 세워놓은 것이다. 


“강경대. 강경대. 강경대. 어디에 있니?”
“선생님. 여기요.”


경대는 손을 번쩍 들었다. 


“왜 거기 서있니?”
“선생님께서 저를 여자 줄에 세워 놓으셨잖아요.”


선생님은 민망한 표정을 짓고 경대를 다시 남자 줄에 세웠다. 하지만 경대는 처음 본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여자처럼 보였다는 게 부끄러웠는지, 속눈썹에 서운함이 어려 있었다. 어머니는 경대의 어깨를 다정스럽게 감싸며 위로해 주었다. 


“경대야. 네가 예뻐서 그런 거야.”


경대는 어머니의 말 한 마디에 서운함을 금방 잊어버리고 밝은 얼굴로 입학식을 마쳤다.


경대는 자랄 때부터 이웃들로부터 많은 이목을 끌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완전한 경대의 ‘팬’이 됐다. 예쁜 외모뿐만 아니라 해맑고 정다운 시선, 솔직하고 선량한 성격, 겸허하고 사려 깊은 마음 때문이었다. 


대치동 아파트에서 살 때였다. 경대는 같은 동에 사는 아주머니를 마주칠 때마다 깍듯이 인사했다. 세 번을 보면 세 번을 인사했고, 다섯 번을 보면 다섯 번을 인사했다. 그만 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얼마나 인사를 열심히 했는지 아파트 단지에서 ‘인사를 제일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자기 아이를 경대와 비교하며 질책하곤 했다. 


“경대 봐라. 경대는 인사도 잘하고, 말썽도 안 부리고, 집에서 책만 본다더라. 너는 왜 그러냐.”


경대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시기를 받을 법도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경대 엄마를 매우 부러워했다. 아들 셋이 돌아가면서 말썽을 부리는데다 자기 방에 들어가면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나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대 엄마는 좋겠어요. 애가 어떻게 저렇게 의젓할 수가 있어요. 마음씨도 부드럽고, 상냥하고, 싹싹하고. 아이 같지 않아요. 우리 애들은 천방지축인데.”


경대는 어딜 가든지 사람들 옆에 붙어 대화를 잘했다.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할 줄 알았고, 묻는 말에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혹시나 의문이 생기면 바로 물어보고 답을 구했다. 


사람도 가리지 않았다. 경비원 아저씨를 만나도 거리낌이 없었고 존중했으며 늘 먼저 인사하고 모르는 것을 물었다. 


“정말 멋진 꽃이에요. 이런 꽃은 처음 봐요. 아저씨. 이 꽃 이름이 뭔지 아세요?”


아저씨는 귀찮은 표정 없이 경대에게 꽃의 이름을 가르쳐 주고 유래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경계심 없이 마음을 터놓는 경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경대는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않았고, 늘 함께 나누며 살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일도 없었다. 


어머니가 집을 비워놓고 장을 보러 갔을 때였다. 경대는 거리낌 없이 옆집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멀뚱멀뚱 기다리는 경대에게 먹을 것을 내놓았다. 한창 배고플 시간이었다.


경대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다. 


“좀 있으면 누나가 올 텐데, 누나 것도 주세요.”
“뭐라고? 어, 그래 알았다.”


아주머니는 경대가 남다른 줄은 알았지만 막상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고맙습니다. 저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누나거든요. 공부도, 음악도, 친구도 좋지만 누나가 제일 소중해요.”


경대는 아주머니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어련 하시겠어. 어린것이 참 신통하기도 하지.”


아주머니는 경대의 성격과 말투가 재밌고 별난 데가 있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서울 숭인초등학교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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