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활과 건강

마라톤 열풍, 자신에게 잘 맞고 즐거운 운동인가?

이동권 2022. 10. 10. 20:40

대구국제마라톤대회 자료사진

 

후덥지근한 여름이 가고 따사로운 햇볕이 대지를 감싸는 가을이다. 하늘은 청자, 백자 빛으로 뒤엉켜 청신한 기운을 선사하고, 들녘에는 울긋불긋 꽃들이 큼지막한 망울을 터뜨려 눈을 즐겁게 한다. 꽃은 생의 절정과 환희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하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가녀린 코스모스며 들국화, 구절초, 메밀꽃을 보면 눈시울은 시큰해지고 만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의 소소한 기쁨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원망하고 자책하며 조급하게 사는 것은 아닌지 해서다. 

간소하게 생활하고 깊게 사색하며 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고달픈 인생을 한탄할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삶은 매우 처연하다. 소설 <마지막 잎새>의 작가 오헨리는 인생은 흐느낌과 울음과 미소로 성립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은 울음. 감동적이고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순간에도 눈물을 글썽이는 인간의 선천적인 특성을 잘 비유한 말이다. 오늘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삶이 그러한 것이니 축 처질 것까지는 없다. 게다가 만물이 성숙하는 가을이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온다. 에어컨이 빵빵 터지는 실내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아파트 단지, 한강둔치, 공원, 학교 등에 앉아 풍요로운 오후를 만끽한다. 특히 마라톤 애호가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눈앞을 씽씽하게 가로지른다. 뛰기 딱 좋은 날씨다. 하지만 모두 다 잘 뛰는 것은 아니다.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쥐죽쥐죽 걷다 뛰다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고, 뛰는 건지 마는 건지 운동화만 번지르르한 사람도 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IMF 이후 경제가 위축되고 불황이 계속되자 중산층을 중심으로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마라톤만의 묘한 매력 때문이다. 

마라톤은 장비가 필요 없다. 특별하게 배울 것도 없고, 동료 없이 혼자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시간을 맞추거나 장소를 선정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그리고 뛰고 싶은 만큼 뛰면 된다. 마라톤 대회는 풀코스, 하프코스, 10Km, 5Km 등 4가지 코스지만 평소에 그것을 꼭 지킬 필요는 없다. 한마디로 ‘프리’하다.  

마라톤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도 좋다. 성공한 사람들, 유명인들이 마라톤을 즐기는 모습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방송되자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어났다. 특히 마라톤은 정신적 피로를 푸는 지식인들의 취미생활로 각광을 받았다. 정준영 사회학자 (방통대 교수)는 이 부분에서 마라톤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읽었다. 

정 교수는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의 저작을 통해 스포츠의 이면에 숨어 있는 갖가지 사회상을 밝혔다. 마라톤의 경우, 팀플레이보다는 개인이 혼자 하는 경기인만큼 사회가 보수화되고,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문화가 확산될수록 활성화된다고 한다. 또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중산층,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즐기는 스포츠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의 지적은 마라톤을 즐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마라톤에서 어떤 사회상을 읽을 수 있는지 함께 유희해보자는 것, 아울러 남들이 한다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움을 느끼는지 살펴보자는 의미다. 

스포츠의학 전문의들은 무리한 마라톤은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잘 알고 뛰자고 충고한다. 마라톤이 심폐지구력을 높여주고,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등의 질환을 예방해주며, 체중감량에도 도움을 주지만 잘못 뛰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것. 자신의 체력에 맞지 않게 달리면 허리 엉덩이 발뒤꿈치 등에 통증이 올 수 있고, 무릎 연골 관절이나 발목 관절이 다칠 수 있으며, 피로와 빈혈로 쓰러질 수도 있다.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를 목표로 달리면 잘못하다 목숨을 잃은 경우도 생긴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마라톤 대회 참가자는 남녀노소를 막론한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르신들, 10살이 안 돼 보이는 아이들도 완주해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마라톤에 대한 과신, 자신의 몸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다. 자신을 살펴보면서 마라톤을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