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 삼류. 저질. 쓰레기. 혐오. 구역질. 거북. 더러움. 몰상식. 그동안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두고 쏟아져 나온 비난들이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폄훼도 있었다. 동성애자를 이유 없이 힐난하는 호모포비아들의 시선과 유사한 인신공격이다.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뒤 조금은 비난의 수위가 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 <뫼비우스>를 계기로 김 감독은 다시 한번 영화계의 마녀가 되고 말았다.
김기덕 감독을 마녀로 만든 시발점은 영상물등급위원회다. 영등위는 <뫼비우스>에 한국 영화관에서 상영될 수 없는 등급을 줬다. 그 이유는 ‘주제와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 부분’과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표현’이었다. 도대체 어떤 장면 때문에 영등위가 저러나 싶어 정신을 집중해 관람했다. 불쾌하고 무시무시한 이유를 들어 해명할 만큼 흉측한 영화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영등위가 제시한 이유는 끝내 납득되지 않았다.
같은 영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인정하더라도 <뫼비우스>에 대한 등급심의는 편협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근친상간은 그저 묘사가 아니라 스토리 전개상 개연성이 충분했다. 여전히 찔러 죽이고, 쏴 죽이고, 찢어 죽이고, 터트려 죽여도 영사기는 돌아가고, 가끔씩 등급은 15세로 허용되는 반면 성에 대해서는 초지일관 민감하다.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은 김기덕 감독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를 두고 김 감독에게 험한 소리가 오갔다. 김 감독의 영화가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고, 봤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면 그렇게 평가하면 될 일이다. 다만 <뫼비우스>가 변태적이건, 몰상식적이건, 불소통적이건 간에 주지하고 싶은 사실은 김기덕 감독이 세계 3대 영화제인 칸느, 베를린, 베니스에서 감독상, 작품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그의 예술세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존중받아야 된다. 김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필름에 칼질을 한 것만으로도 참기 힘든 수모다. 그것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삿대질부터 하는 것이 더욱 비상식적이다.
서두가 길었다. <뫼비우스>를 관람한 소감을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파격적이다. 이 시나리오와 촬영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을 김기덕 감독의 얼굴이 그려진다. 자신에게 쏟아질 수많은 공격도 예상했을 것이고, 자신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며, 미풍양속을 이유로 위선을 떠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두고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용기를 냈다. 성과 성기에 대한 욕망과 가족의 또 다른 면을 드러내 우리 모두 스스로 성찰하기를 바랐다.
우리 사회에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인 관계가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바뀌었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의 변화를 겪었다. 사람이 사람보다 돈을 사랑하는 사회,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적인 두 사람이 만나 가족이 되고, 아이를 낳아 이기적인 성인으로 키웠다. 이러한 악순환은 어느 순간 거대한 쓰나미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가족의 해체다. 호적상의 해체뿐만 아니라 한 공간에서 잠만 자는 관계로 탈바꿈한 가족, 욕망만 존재하는 개인이 모여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가족,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가족이 바로 <뫼비우스>다.
<뫼비우스>는 가족이라는 형식적인 틀에 얽매어 영혼 없이 살고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에 대한 질투와 증오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기대도, 이해도, 용서도 없다.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도 없다. 모든 충돌과 격정은 전부 상대방 탓이다. 오직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욕망을 덜어내는 것이면 충분하다. 부부는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상처주기에 몰입한다. 상처의 끝은 상대방의 욕망과 가장 아끼는 것을 제거하는 것으로 치닫고, 그 결과는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김기덕 감독은 성기와 성에 대한 욕망으로 우리 사회를 꼬아보면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한편으로는 익명성이 보장된 가상공간에서, 도시의 빌딩 지하에서 억눌린 욕망을 발산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이중성을 까발린다. 어법은 돌직구다. 추행, 강간, 미성년 성, 성기, 유사 성행위, 근친상간 등을 소재로 쾌락을 좇으며 심각하고 우스꽝스러운 파장을 만들어낸다.
영등위는 이런 표현들을 두고 문제를 제기한 듯싶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욕망에 대한 고찰이었고, 가족의 해체에 대한 표현이었다. 다시 말하면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이자 표현이었다. 예를 들면 남편의 성기를 이식한 아들에게 쾌락을 갈구하는 엄마는 근친상간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에로스, 인간의 품격을 깨뜨리는 비상식이 아니라 표피적인 부부의 관계에 대한 계사였다. 이것은 또 욕망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적 감각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결과는 예상대로다. 파멸이다. 주인공들은 죄책감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쾌락과 욕망을 포기한다. 그런데 김 감독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꿈으로 처리했다. 현실이 초현실로 둔갑하는 것 같아 조금은 당황스러웠고, 어설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나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원래 현실로 보여주려고 했지만 한국 사회의 도덕과 윤리로 볼 때 작가로서 깊은 고민 끝에 꿈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다. 주인공들의 감정표현과 행동을 따라가면서 그대로 느끼는 영화다. 하지만 대사가 없어도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다. 오히려 김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더욱 잘 다가온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세 가지다. 가족은 무엇인가, 욕망은 무엇인가, 성기는 무엇인가다. 우리가 모두 욕망으로부터 잉태돼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메시지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이 영화는 무척 재밌다. 이중성을 걷어내고 보면 김 감독이 하는 얘기가 들리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가 위험하고 발칙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여태까지 성과 성기의 문제를 쉬쉬해오면서 곪아 터지게 만들었는지 느낌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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