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평이 전반적으로 ‘볼만한데 재미없다’길래 봤다. 정말로 재미없는지, 그 재미라는 게 무엇인지 확인해봤다. 무거운 주제를 재밌게 풀어놓았다는 반응도 많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영화적 수사일 뿐이다. 주제가 무거우면 생각도 많아지고, 몸과 마음도 무거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설국열차의 ‘재미없다’는 그런 의식의 반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려한 액션과 오락에 치중한 영화, 이를 테면 깡패영화나 범죄영화를 재밌다고 표현하는 말은 이젠 좀 신물 난다. 특히 억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천만 관객이 봤다 해도 사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국열차는 재밌다. 하지만 ‘재미’로 평가할만한 영화는 아니다. 얼음 속을 질주하는 열차에 탄 마지막 인류는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다.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다 도래한 빙하기. 하지만 월포드라는 엔지니어는 멈추지 않은 열차를 발명해 극소수의 사람들을 태운다. 이 열차에는 멈추지 않고 영원히 달릴 수 있는 엔진이 있다. 이 엔진을 움직이는 사람, 월포드가 이곳의 최고 권력자다.
이 열차의 꼬리 칸에는 본래 탑승자 명단에 없는 이들이 타고 있다. 빙하기가 도래하기 전 월포드에 선택받지 못한 민중, 예정된 손님이 아니다. 월포드는 이들을 꼬리 칸에 가두고 도토리묵처럼 생긴 프로틴 블록이라는 식량을 주며 사육한다. 이들이 처음 열차 탔을 때 월포트는 물과 식량을 주지 않아 서로를 잡아먹게 했다. 개체수를 줄이려는 월포드의 계략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월포드는 기차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폭동까지 조종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자신의 의도대로 열차 안이 움직이고 통제돼야 하며, 각각의 칸에 탄 사람들이 질서와 본분을 지키는 것, 그 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강요한다. 특히 꼬리 칸에 탄 인간들에게 존엄성은 없다. 동물처럼 사육되다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월포드는 마모된 엔진의 부품 대신 아이들을 잡아가 일을 시킨다.
설국열차는 계급 사이의 투쟁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다. 초호화 생활을 누리는 귀족과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민중이 한 열차를 타고 움직인다. 요즘 사회로 치환해보면 제일 앞 칸에 자본가가, 제일 뒤 칸에 노동자와 빈민이 한 기차에 타고 있다. 중간에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이들은 자본가의 손과 발이 돼 움직이며 그들을 떠받는다. 지배층의 안락을 위해 스스로 피폐한 삶을 견디며 복종한다.
꼬리 칸의 커티스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들을 모은다. 체제 자체를 바꾸는 정치투쟁, 전복을 시도한다. 혁명이다. 참혹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열차의 지배권을 얻기 위해 저항하고 기차를 움직이는 엔진,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위해 앞 칸으로 나아간다. 계급의 틀과 억압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기 위해 조직적인 투쟁을 감행한다.
커티스 일행은 피를 대가로 치르며 한 칸씩 앞으로 전진한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이다. 이들은 월포드를 신처럼 생각하는 아이,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부자, 환락에 빠져 있는 젊은이 등을 본다. 이 장면은 멕시코 영화의 거장 알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홀리 마운틴’이 생각날 정도로 미술적 감각과 창의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 정도의 미장센이라면 예술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인지 열차와 열차 사이의 문이 열릴 때마다 극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피 말리는 살육전은 계속해서 끊이질 않는다.
가장 시선을 끄는 장면은 첫 저항이 벌어진고 난 뒤 물탱크까지 진격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군인들과 맞선다. 커다란 도끼와 각종 연장들이 서로 부딪치며 살점을 떼어내고 피를 튀긴다. 생각만 해도 입이 바짝 마르는 참혹한 혈전이다. 특히 싸움이 열차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더욱 크다. 사람과 사람의 어깨가 닿고 시체와 시체가 포개질 때 심장이 쪼그라들 것만 같았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예고된 영화였다. 영화 ‘괴물’에서, 봉 감독은 이 괴물의 탄생을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약품이 한강에 무단 방류되는 장면으로 대신했다. 또 괴물의 목숨줄을 끊어내는 무기로 시위대의 화염병을 이용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봉 감독의 세계관이 어떠한지 예상했을 것이다. 봉 감독의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마더’에서도 주인공의 입을 빌어 대사로 은유했다.
봉 감독은 설국열차에서 더욱 격해졌다. 17년 동안 유지된 앞 칸과 뒤 칸의 생산관계, 피지배계급의 봉기와 저항, 그들이 앞 칸을 전복하기 위해 흘리는 희생을, 계급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앞 칸과 뒤 칸의 구조 속에 대입하고, 계급 해방을 민중의 역할에서 찾는 가능성 혹은 과제를 제시했다. 이는 곧 봉 감독의 세계관이자 이데올로기이며, 부조리한 생산관계와 계급 대립의 해소, 곧 새로운 사회에 대한 그의 열망으로 읽힌다. 과연 뒤 칸 사람들의 운명, 설국열차의 미래, 봉준호 감독의 세계관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설국열차는 ‘여행’과 비슷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여행. 두 시간이지만 이 영화도 아는 만큼 감동하고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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