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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 우리에게 집은 무엇이냐, 허정 감독 2013년작

이동권 2022. 10. 9. 20:46

숨바꼭질, 허정 감독 2013년작


숨바꼭질은 ‘우리 집에 낯선 누군가가 숨어 살고 있다’로 시작해 이 ‘낯선 사람이 새 주인이 된다’로 끝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은 설정이지만,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생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하다.

 

‘주인 바꾸기’의 본질에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더 좋은 집을 차지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제거하는 흉측함은 오히려 ‘집이 뭔지’, ‘오죽했으면 저럴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모두 다 가난할 때는 가난이 천지니 마음이 그렇게 괴롭지 않다. 하지만 자신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삶의 격차가 점점 벌어질수록 마음속에는 응어리와 분노가 서린다. ‘빈익빈 부익부’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마도 영화팬들이 그런 욕망을 십분 이해하면서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나 싶다.

1%대 99%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잘 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세상. 이런 현실을 보고 한숨을 내쉬지 않는다면,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 부자, 특혜 받는 자들에 대한 푸념이나 부자로서의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에 대한 지적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가족과 한 모녀의 삶을 통해 부자들의 경제정의를 우회적으로 꼬집는다.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은 하나뿐인 형에 대한 비밀이 있다. 감독은 이 비밀로 부자들의 경제정의 문제를 건드린다. 또 더 좋은 집에 살기 위해 인간성마저 잃어버린 모녀를 우리 사회의 자화상으로 비추면서 다시 한번 경제정의를 은유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부자에게 관대했다. 못생긴 것보다는 잘생긴 것, 보이지 않는 내면보다는 외면, 실속보다는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부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재벌과 대기업 집중 육성, 부동산 활성화 정책을 펼쳤고, 법률지원, 세금, 국가 인프라 구축 등 수많은 부분에서 특혜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부자들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먹여 살릴 것이라고 기대했고, 국민들에게는 모두가 함께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세뇌했다. 하지만 부자들이 거둬들인 열매는 골고루 나눠지지 않았다. 부자들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 국민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빼앗기게 됐고, 이것이 심화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가속화됐다. 과연 1%의 성장을 위해 99%가 희생당하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이 영화는 피부병이 심한 형과 입양된 동생,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욕망을 통해 ‘아니오’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욕망 때문에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 대량실업 등 여러 현상들을 둘러보면 희망의 가닥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위협 요소들은 이 영화에서 기호의 증식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형의 갑작스러운 실종 소식을 듣고 수십 년 만에 형에 집을 찾아가지만, 형이 사는 아파트에는 이상한 기호가 적혀 있다. 주인공은 이 기호가 뭔지 나중에야 알아차린다. 남자가 몇 명, 여자가 몇 명, 자녀가 몇 명. 집에 살고 있는 가족을 식별하는 기호다. 그리고 그 기호는 점점 더 좋은 집으로까지 확대된다. 마치 어떤 곳에서 살기 위해 찜을 해놓고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식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어떤 지역, 어떤 아파트, 어떤 제품, 어떤 사람 등을 정해놓고 막무가내로 그것을 채우고, 얻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를 집에 대한 주인공의 집착으로 까발린다. 아울러 그러한 시스템을 넘지 못한 채 자신을 저당 잡혀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처참하고 끔찍한 미래를 보여주면서 ‘생각을 달리 해보자’고 권유한다. 좀 더 나은 집, 좀 더 나은 환경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지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 사회가 성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비성장 시스템을 지향한다면, 내가 아니라 우리, 우리 가족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이타심을 갖는다면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 영혼을 팔거나 자아를 파괴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며, 불안하고 불행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크게 웃으며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