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이 음악 좋다

박성환 - 손 The Hand, 신념과 서정의 힘

이동권 2022. 10. 9. 21:03

박성환 밴드 2집 기억


연두색 배경에 앙상한 나무가 그려진 박성환 밴드의 2집 앨범. 자필 사인 ‘멈추지 않고 쉼 없이 흐른다’와 함께 받아 들었다. 이 음반을 보고 있으니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디딤돌을 함께 놓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느껴진다.

박성환 밴드의 2집 앨범 ‘기억’을 소개하려면 박성환의 솔로 앨범 ‘시절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시절가’는 집회에 나가서 노래 부르는 가수, 소위 민중가수들 앨범 중 가장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앨범으로 꼽고 싶은 음반이다. 2001년 당시 이름 꽤나 있던 인디락그룹 ‘프로다칼로’의 리더 김현이 프로듀서를 맡은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앨범에 수록된 전곡은 모두 수준급이다. 전곡을 리플레이하면서 듣고 다닐 정도로 특별한 추억을 남겨준 음반이다.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바다’였다. 이 노래는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울분이 없어지지 않을 때 많이 슬퍼하도록 도왔고, 위로도 해주었다.

앨범 ‘시절가’의 기반은 락이다. 포크적인 느낌이 전반적이지만 기타 애드립과 멜로디 전개가 무척 세련됐다. 특히 안정된 연주와 실험성이 가미된 리듬 그리고 서정성은 기존의 민중가요와는 사뭇 다른 감동을 주었다. 한 번 들으면 귀에 쏙 박히는 노래들은 아니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질리지 않았고, 듣는 대로 느껴지는 노랫말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박성환의 목소리도 앨범의 깊이를 더했다. 그가 성악을 전공해서, 노래를 잘 해서가 아니다. 그 목소리에 담긴 마음, 촉촉한 감성, 격정과 담담을 오가는 목소리의 변화는 나지막한 야산 꼭대기를 휘감고 돌아가는 바람의 변화무쌍함을 닮았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도종환 시인의 시에 곡을 입힌 <시절가>다. 이 앨범에서 몽환적인 락 발라드 <내 잠 속에 내리는 비>는 9분 32초나 되는 대작이다. 재즈풍의 <푸른 외등>은 생동감 넘치는 피아노 반주로 가슴을 자맥질하고, <사대가>는 비장미 흐르는 기타 애드리브와 읊조리는 샤우팅으로 심중을 흔들어 놓는다. <개울>은 이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이번에 발표한 2집 ‘기억’에도 개울이 수록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밖에도 이희진이 작곡한 <늑대>, <개울>, <깃발>은 독특한 사색으로 이끌고, <겨울물고기>는 색다른 감흥으로 이 음반을 듣는 재미와 감동을 높인다. 마치 아트락을 듣고 있는 기분.

박성환 밴드하면 앨범 ‘NO FTA : Fuck The America’도 빼놓을 수 없다. 박성환 밴드가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 ‘퍼킹 유에스에이’(Fucking U.S.A)라는 노래로 울분에 젖은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줬다면, 이 앨범은 록이라는 저항의 이름으로 미국을 날카롭고 신랄하게 까발렸고, 은유적으로 국민의 각성을 유도했다.

박성환 밴드는 이 앨범에서 ‘시절가’ 보다 좀 더 가볍고 청량한 느낌으로 대중과 교감을 시도한다. 노래 <그러지 뭐>, <아이들의 미래>, <이젠 떠나> 등은 락의 기본 기조, 중량감 있는 사운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유지하면서 일상화된 언어로 대중에 손을 내민다. 이 앨범을 듣다 보면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이 돼 줄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들이 느껴진다. 동시에 박성환 밴드는 <나의 노래는>에서 ‘나의 노래는 칼이 되고 창이 되어 / 나의 노래는 나팔 되고 북소리 되어 / 우리 노래로 세상을 멈춰서라도 / 바꿔 내리라 끝내리라’로 과거 투쟁가요의 전위적인 분위기를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박성환 밴드의 운동성과 거기에 스며들어 있는 서정성이다. 이 서정성은 박성환의 이름을 걸로 나온 모든 앨범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박성환 개인에 대한 선입견일지 모르지만, 선하고 순수한 그의 성품은 어떤 노래도 서정적으로 바꿔버리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박성환 밴드 2집 앨범 ‘기억’은 베테랑, 오래된 밴드의 냄새가 심하게 풍긴다.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밴드를 유지하면서 멤버들 간에 스며들어 있는 믿음이 사운드에서 느껴진다. 돈 안 되는 이 바닥에서 노래를 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신념을 지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박성환 밴드는 이것이 되는 밴드다.

2집 앨범은 정확한 음정과 안정된 사운드, 연륜에서 느껴지는 묵직함, 부드러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인함이 가득하다. 여전히 대중가요지만 민중가요다. 민중가요란 다른 게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 강조되는 음악,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음악, 그동안 박성환 밴드와 걸어온 외길과 신념 자체다. 이런 것들이 노래에 융합돼 진한 감동뿐만 아니라 듬직한 믿음을 느끼게 한다. 또 음악으로 강렬함과 슬픔, 거셈과 연약함, 시끄러움과 조용함을 함께 다듬어 희망과 사랑에 싣는 감각은 이미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다.

이번 앨범의 노랫말들은 직접적인 투쟁을 얘기하지는 않지만 삶에 대한 농담과 인간 본연의 정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잘 섞어 서정과 희망으로 직설한다. 노래 <손>으로 ‘힘이 들면 쉬어가요 그 짐 잠시 내려놔요 / 지쳐버린 그대 내 손 잡아요’라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길 위에서...노래하다>로 ‘시간이 흘러 돌아봤을 때 지금 이 시간들은 / 나의 삶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기억될 거야’라고 위로한다.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로 ‘살아가는 동안엔 너 없이 나는 안 되겠어’라고 고백한다.

반면 < WHY >에서 ‘힘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 그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 바꾸려 하는 자들 뿐 한 명의 힘 있는 자 넌 뭐야 넌’이라고 쏘아 붙이고, <돈>으로 ‘빙빙 돌아가 20원짜리 세상 / 돈돈 검은돈 더러워진 내손은 내 맘은 더 굶주린 삶을 살아가라고 물질만능을 성찰하며, <원해>로 원해 그런 널 원해 거짓과 위선과 욕심을 버려 / 원해 그런 널 원해 가면을 벗고서 세상으로 나가라고 충고한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WHY라는 노래가 가장 마음에 든다.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어깨가 들썩이고 고개를 까딱까딱하게 된다.)

막바지에 이르러 박성환 밴드는 ‘함께’와 ‘희망’을 노래하며 특유의 서정으로 마무리한다. <벗 하나 있었으면>에서 ‘마음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그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그곳에 가자>에서 ‘거친 파도를 넘어 가자 그곳에 가자’, < LIFE Time >에서 ‘같은 곳 보며 나는 네 곁에 또 너는 내 곁으로 와’로 힘내서 살자고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