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 사진 예술은 정지된 한 순간을 표현한다. 그중에는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도 있지만 깜빡하고 지나가면 보지 못하는 찰나의 장면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회화, 후자의 경우는 사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사윤택 작가는 찰나의 장면을 회화로 그렸다. 그는 코트를 벗어나 튕겨 나가는 테니스공, 이 테니스공을 놓쳐 헛손질하고 마는 선수를 포착했고, 바닥에 떨어지는 공을 받아내기 위해 몸을 던지는 비치발리볼 선수를 잡아냈다. 한밤중 책상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다 문득 느껴지는 오싹한 기운, 가로등 불빛이 반짝이는 공원의 사람들, 술에 취해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는 자동차도 그 순간을 붙잡았다. 뿐만 아니라 영화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슬로 모션 같은 이미지도 형상화했다. 한 몸에 달려 있는 여러 개의 얼굴, 다이빙하는 수영선수의 잔상,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여러 컷의 연속 이미지로 한 화면에 담아냈다.
그의 작품은 상상력을 자극했다. 예를 들면 음악 소리를 따라 머리를 흔드는 동작,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상쾌함, 지금 이 순간 갤러리를 둘러보고 있는 장면까지도 수천 장의 스틸 컷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나게 했다. 한편으로는 인생의 무상함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순간이란 언제나 영원한 현재요, 그 자체로 멈춰진 것, 하지만 우리 삶은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있다. 특히 ‘어둠’이나 ‘지나감’처럼 무거운 작품은 이러한 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순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주제였다. 움직임과 움직임의 사이, 시간과 시간의 간격, 인식과 비인식의 차이, 의식과 무의식의 틈과 같은 물음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순간의 개념을 처음으로 규정한 철학자는 플라톤이다. 그는 순간을 운동과 정지 사이의 일종의 기묘한 것, 시간 속에는 존재하는 않는 것이라고 했다. 키르케고르는 순간을 과거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을 갖지 않는 현재적 그 자체의 것, 영원과 시간이 서로 접촉하는 이의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종교는 달랐다. 불교 같은 경우는 생멸과 무상의 시간 단위로 순간마다 생겼다 멸하고, 멸했다 생기면서 시간은 이어진다고 정확하게 불렀다.
사윤택 작가의 순간에서도 그러한 의미들 중 하나로 읽힌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현실이지만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찰나를 인식하게 됐다. 아울러 그의 순간은 한 인간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대입되고 전이됐다.
사윤택 작가의 작품은 힘이 있다. 생활의 자신감이 캔버스에서 느껴진다. 사 작가는 순간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이프로 눌러 미끄러지고 돌렸다. 못처럼 끝이 예리한 것으로 긁어 선을 만들고 파헤쳤다. 또 붓으로 거칠게 찍어내고 문대며 형체도 뭉갰다. 색감 또한 어둡거나 채도가 높은 컬러로 강렬하게 표현하거나 아예 명암을 죽여 흐릿하게 그리기도 했다.
매번 얘기하지만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보는 이미지와 전시장의 이미지는 차원이 다르다. 사윤택 작가의 작품은 특히 그러하다. 매섭고 직관적인 표현, 날카롭고 신랄한 묘사, 예민하고 강약이 넘치는 형태, 이상야릇하게 깊이가 넘치는 색채의 감동은 현장이 아니면 느끼기 힘들다.
예술은 자신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치유하는 도구이여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사윤택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새삼스럽게 인생에 대한 모종의 깨달음과 기묘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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