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DMZ에서 작품 ‘디스로케이티드 시네마(Dislocated Cinema)’를 선보였던 작가 니콜라스 펠처(Nicolas Pelzer). 그는 그곳에 바깥 DMZ를 풍경을 영화관처럼 바라볼 수 있는 하얀색 유리창을 설치해놓고 분단의 비극을 얘기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이데올로기의 시각을 교정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거름종이를 갖다 대면서 사상이나 이념 이전에 인간을, 그리고 실제 현실을 바라봐야 하며, 그래야만 진정한 평화는 이뤄진다고 역설했다.
니콜라스 펠처는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는 우리의 삶을 투영하면서 미래 정보화 사회의 비극을 줄여보자는 메시지를 띄우는 새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 벽면에 이쪽과 저쪽을 경계 짓는 기다란 커튼을 설치했고, 유리로 만들어진 투명한 테이블 위에 현실 세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얘기하는 책들을 진열했다. 커튼과 유리는 그가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소재로, 어떠한 실체에 다가가는 그만의 방식을 보여주는 매개다.
그는 유리나 커튼을 설치해 일종의 ‘경계’를 설정하고, 그로 인해 대상을 바라보거나 생각하는 과정을 층으로 형성한다. 이 층을 중심으로 서로의 시선이 오가기도 하고, 그 층 너머의 무엇을 바라보거나 상상하기도 하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층위가 갖가지 관계로 얽혀 있는 대상의 실체에 보다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고 봤다.
펠처는 이 작품들로 현실 공간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을 끊임없이 오가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은유했다. 창문이 아닌 전시장 벽면에 걸린 커튼은 실제 세계와 추상적인 세계가 서로 중첩되는 관계를 나타냈고, 커튼에 인쇄된 추상적인 이미지는 인터넷과 같은 현실 세계 너머의 판타지 세계를 형상화했다. 유리로 된 투명한 테이블은 가상공간인 인터넷 세계의 비가시적인 현존성을 드러내면서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 공간에 대한 성찰을 유도했다.
니콜라스 펠처의 작품은 커튼 너머, 유리 너머 층위를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이를 테면 ‘고도화된 정보사회에서 보내는 외딴섬에서의 하루’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외딴섬의 생활은 도시와 다르지 않다. 안경에는 최첨단 컴퓨터가 탑재돼 있다. 스마트폰을 굳이 보지 않아도 눈앞에 뉴스가 분사되고, 뉴스는 눈동자를 따라 자동스크롤 된다. 자신이 투자한 증권 시세는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막내딸 생일선물도 눈 한 번 깜빡이면 구입이 가능하다.
펠처의 작품은 사용자가 장소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으로 발전해가는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으로 전이됐다. 자동차, 냉장고, 안경, 시계 등 생활기기에 컴퓨터 관련 기술이 스며들어 있는 미래의 모습이다. 너무 앞서간 미래일까?
아니다. 이러한 사회는 머지않았다. 광대역통신과 컨버전스 기술이 일반화되고, 정보기술 기기의 가격이 낮아지는 등 정보기술이 고도화되면 가능하다. 또 현재 전 세계 기업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돌아봐야할 것은 이러한 미래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이러한 미래 사회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가 가장 큰 문제다. 수많은 개인 정보의 수집과 분석이 뒤따르고 손쉬워지면서 프라이버시 침해가 높아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정책 마련, 개인의 도덕성이 필요하다. 또 개발자와 이용자의 책임 분담에도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아울러 지나친 성장주의가 대두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쉽게 얘기하면 비싼 기기, 높은 정보이용료 때문에 잘 사는 사람만 이용하는 서비스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정책이 뒤따라와야만 미래는 밝다. 그렇지 않으면 SF영화와 같은 우울한 미래는 현실로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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