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가슴에 걸린다. 앙상한 나무와 거친 돌멩이, 눈 덮인 대지와 길게 늘어진 전선, 그리고 배경 위를 날아다니는 새하얀 꽃잎. 여름 내내 가득했던 따사로운 햇빛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이제는 모두 그리움과 고뇌로 번진 과거의 이야기일 뿐.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나선 한 인간의 고행이 느껴진다.
반면 채도 높은 색면은 강렬하게 부딪친다. 풍성한 생명의 율동처럼 오롯이 홀로 빛을 발산한다. 하지만 정확한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보면 파라솔 같기도 하고, 도시의 단면 같기도 하다. 그림자는 모두 감추고 오직 색과 단순한 면으로 만개한 이미지들. 거기에서도 고행의 숨결은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상선 작가의 작품은 감동적이다. 처연하고 쓸쓸했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발화된 선경, 아름다움과 고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이 느껴졌다. 또 도시의 황량함, 세월의 영속성, 으스스한 밝음, 덩그렇게 놓인 고독 등도 그의 그림에서 읽힌다.
이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정확하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혜를 깨닫고 싶은 마음,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 인간의 삶을 은은하게 울리고 싶은 노력은 감지된다. 현실의 일상에서, 그것이 비록 책망과 회한에 젖게 하더라도 끊임없이 떠올리고 생각하면서 살고 싶은 바람. 그의 그림은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진지한 사색의 장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상선 작가의 작품은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허문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이미지에 개입시켜 더욱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 작가는 사물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자신이 느끼는 추상적 세계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비구상으로 보이지만 구상이며, 구상 그 이상의 느낌을 준다. 어떤 작품들은 피트 몬드리안의 추상작품 같았다. 색과 선이 똑 떨어질 만큼 분명하고 적확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작가의 생각을 구상화했다.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이상선 작가의 작품은 시선이요, 명상의 집합체다. 그의 작가 노트에 실린 ‘침묵이야말로 정확한 것’, ‘가짜가 아닌 진짜 작업은 작업이 가져다 줄 결과가 아니라 동기 그 자체’ 같은 표현에서 그 맛을 찾을 수 있다. 때론 그는 선문답 같은 추론도 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 물질은 존재하나 자체의 고유한 의미는 없다.’, ‘실타래가 꼬이고 꼬였지만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숙명적인 느낌의 작업’과 같은 표현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단순함의 아름다움. 절대적인 단순함이란 지극히 단순함이다.’ ‘난 무엇으로 사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마치 계시처럼 떠올랐다. 작업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산다고.’ ‘내 그림을 찾아 그려야 한다.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얼굴. 어느 것이 진짜 나의 것인가?’와 같은 표현이 이를 반증한다.
이상선 작가의 작품은 자연스러운 선정(禪定)과 사유의 세계로 인도한다.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느껴보는 사고의 향연이랄까.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들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 같은 마음, 자신의 내부에 울리는 정신적인 기쁨과 지독한 내성에 매달리면서 욕망을 버려가는 과정, 그의 단순한 그림에서 이와 같은 안식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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