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구슬픈 음악이 흘렀다. 가슴이 찡했다. 생명의 광채를 잃고 깊은 슬픔을 뿜어내는 음악. 거대한 하늘을 덮은 버섯구름처럼 어마어마한 한기를 느끼게 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규칙하고 우울한 이 음악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전시 관계자는 “이 음악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정용진 작가가 직접 선곡한 노래”라고 귀띔했다.
1945년 7월 16일 5시 20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이 터졌다. 폭탄이 터지자 도시는 고막을 찌르는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타 죽었다. 또 수만 명의 히바쿠샤(피폭자)를 만들었다. 원자폭탄은 ‘인간이 만든 무기에 스스로 자멸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그 순간 미국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용진 작가는 “원자 폭탄의 첫 실험 때 미국에서 소수의 고위층 간부들과 과학자들이 이것을 20km 이상 떨어진 벙커 안에서 지켜보게 되는데, 이때 벙커 안의 사람들 몇몇은 서럽게 울었고, 몇몇은 승리를 확신하며 신나게 웃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을 유지했다”면서 “나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이 작품은 침묵을 그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용진 작가는 팝아트적인 요소를 작품에 도입했다.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에 갖가지 도형과 색채, 텍스트, 이미지들을 혼합해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제작했다. 그런 강렬한 만큼이나 그의 작품은 깊은 슬픔을 전달했다.
특히 그의 작품은 2011년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 사고를 떠올리게 해 더욱 큰 공포를 느끼게 했다. 사고가 났을 당시에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버금간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방사선 물질이 누출되고 있다는 사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일본의 ‘원자력손해배상법’을 보면 거대한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사회 동란에 의한 사고일 경우에는 보상책임이 없다. 이는 다른 나라의 경우도 비슷하다.
정용진 작가는 작품에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아마도 그것은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나고 싶다’, ‘핵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아울러 그의 작품은 왜 전쟁으로 무고한 민중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그들의 희망을 빼앗아버린 것이 과연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인지 되묻고 있다.
정 작가의 작품은 전쟁 너머, 우리 사회의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도 적용된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높은 빌딩들이 계속해서 들어서지만 반대로 인류애에 대한 걱정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에게마저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은 요원해진다. 모두 자기 살기 바쁘고, 그것도 모자라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욕망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구에 대한 고민은 어떠하겠나. 원자폭탄은 많은 이들에게 우려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이 만들어지고, 지구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울부짖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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