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문형태 '캔디'전 - 현실의 고통과 비현실의 희망

이동권 2022. 10. 8. 19:49

 

완성된 그림들이 늘어날 때마다 나는 마치 어린 왕자가 고통 받는 바오밥 나무를 떠올렸다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커다란 욕조에 들어가 있다.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꽐꽐 쏟아져 나와 이 남자의 얼굴을 없앤다. 욕조 바닥에는 한 마리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세웠다. 다른 그림에서 남자는 발가벗었다. 얼굴은 술에 취한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고, 손에는 술병을 쥐고 있다. 물론 이 그림에서도 남자는 욕조 안에 있고,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꽐꽐 쏟아져 나왔다.

이 남자는 또 다른 그림에 등장한다. 한 손에 담배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욕조에 술을 채운다.  이 남자는 다른 그림에서 샤워를 했다. 벌거벗은 남자의 몸은 기형에 가깝다. 어깨는 넓고 등은 휘었다. 다리는 짧고 왜소하다. 목은 굵고 길다. 다른 그림에서는 수영장처럼 크기 보이는 욕조도 보인다.

문형태 작가의 작품은 고립된 상황으로 나를 이끌었다. 불만과 슬픔, 분노와 울분 같은 것이 뒤섞여 있는 듯했고, 각박한 현실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한편으로는 작가 개인의 일상이 꿈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장 벽면에는 ‘완성된 그림들이 늘어날 때마다 나는 마치 어린 왕자가 고통받는 바오밥 나무를 떠올렸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남자는 이 그림을 그린 문형태 작가 자신이 맞다.

문형태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개인과 우리를 투영해낸다. 작품 중 왕관을 쓴 인간은 외면적인 아름다움을 숭상하고, 가식적인 풍요로 치장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들춰내는 것 같았다. 다른 그림도 모두 과장된 것처럼 형상화돼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이 우리의 실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기형으로 질식시켰다가 가장 순수한 연민으로 인간성을 재생시키는 의식 같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움츠려 들지 않았다. 침통하고 음울한 분위기에서도 유머와 위트가 느껴졌다. 현실적인 것들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형상화하는 작가의 감각 때문이겠다. 외계인처럼 화장을 하고 가슴이 고깔처럼 가슴이 튀어나온 옷을 입은 팝 가수 레이디 가가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은 이유와 비슷했다. 우리가 말하기 꺼리는 것을 꺼내놓는 것 같았다. 용기 혹은 에너지 같은 것이 있어 보였다고나 할까.

문 작가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가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의미와 메시지가 있겠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현실의 부조리, 우리 사회의 병폐와 모순이 보였고, 또 거기에서 파생된 것들에 침식당하는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감상적이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그가 전달하려고 하는 이미지는 인간 본연의 정서와 매우 가까웠고, 얘기를 전달하는 방법도 자연스러웠다.

문 작가는 자신의 일상과 경험, 주변의 일들을 형상화한 작품을 소개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왜곡했고 강렬한 색감을 입혔다. 일부 작품들은 초현실적인 감성이 물씬 풍기기도 했다. 평범함 일상의 모습이긴 하지만 사실이 아니고, 사실 같지 않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현실의 이야기다.

문 작가는 뭔가를 규정하거나 단정 짓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계획된 작업인지, 즉흥적인 작업인지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뭔가를 얻으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완성해나가는 의미에서 붓을 드는 것이다.

 

 

 

 

문형태 작가의 'CAKE'전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문형태, Family Slope 45.5x33.4cm, oil on canvas 2014 ⓒ갤러리 나우

 

문형태, Redpine 43x33.4cm, oil on canvas 2014 ⓒ갤러리 나우

 

문형태 작가의 '미스터 제페토'전에서 소개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