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이주리 'Lucid Dream'전 - 자본주의 괴물과의 혈전

이동권 2022. 10. 7. 21:32

마지막 도시, 2013 ⓒ이주리


놀랍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격이다. 인류에 많은 영향을 끼친 철학은 충돌 속에서 명확하게 다듬어졌다. 이주리 작가의 작품에서도 그것이 보인다. 사상과 현실, 작업과 결과물이 수없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정제돼 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명징하다. 그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들을 까발린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핑크빛이 아니다.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폭발했고, 온갖 이득을 노리는 침략전쟁과 정치적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투쟁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 이주리 작가의 작품은 유의미하다. 무섭고 험악한 이미지 때문에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작품은 현실의 반영에서 조명돼야 적절하다고 본다.

이주리 작가의 작품을 보면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엄청난 깊이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들춰내는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신진작가들과 갤러리들의 관심은 아름답고 잘 팔리는 예술에만 집중돼 있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발표되지 않으니 발언하는 미술이 사람들에게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1980년대는 소위 ‘민중미술’이 봇물을 이뤘다. 억압받고 쫓겨 다니던 사람들, 한반도의 평화를 외치던 사람들, 일하게 해달라고 절규하던 사람들 등 자본과 권력의 야만적인 폭력에 고초를 겪은 수많은 민중이 캔버스의 주인이 됐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비판을 들어보려 하지 않고 무조건 ‘빨갱이’ 같은 딱지를 붙여 세상에서 배제시킨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고약한 세상이다.

문화는 힘의 방향성을 따라 움직인다. 그 힘에는 권력과 자본도 있지만 야만과 시련, 유혈과 공포, 투쟁과 저항 등 수많은 것들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과도한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의 갖가지 부조리를 양산해내는 이때 무엇보다 예술가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예술가들이 말을 하기 시작해야 힘의 방향성도 바뀌고, 새로운 사회도 만들어진다.

약점이 없는 것은 없다. 제 아무리 완벽한 것도 보완하고, 다듬고, 성찰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약점을 개선하는 후속 작업을 게을리하면 점점 곪아가다 하나둘씩 터지고, 잘라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지금이 딱 그런 꼬락서니다.

이주리 작가가 ‘Lucid Dream’이라는 주제로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구조, 욕망과 억압의 문제들을 탐구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현실의 요소들을 변형하거나 새롭게 창조해낸 형상들로 권력과 억압에 대한 분노와 욕망을 표출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각몽’처럼 갈등과 혼란의 상태를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형상화했다. 자각몽은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채 꿈을 꾸는 모순된 현상을 뜻한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판타지적 요소들이 사슬처럼 엉켜있다. 이 이미지들은 착취와 억압, 약탈 등이 만연한 비정한 사회, 지구 최후의 날을 암시한다. 또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검고 붉은 선과 깃발로 견고한 땅을 허무는 이미지는 기존의 체제와 권위가 전복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