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랙퀸’을 진지하게 봤다. 충동과 ‘우연’이 계속되는 삶이지만, 드랙퀸 ‘쇼’를 본다는 것은 그 이상의 경험이다. 하지만 웃음과 탄성이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모두들 다른 것 같아도 사람은 사람이다. 먹고 싸고 사랑하고 싸우고 울고 웃고 섹스하는 삶, 사는 게 다 그렇다. 성품이 다르고, 생긴 모양이 다르고, 젠더가 달라도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 그러나 사람은 모두 똑같은 그림자를 밟으며 살지 않는다. 하는 일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과제도 다르고, 추구도 다르다.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삶이 있고, 사랑의 방식 또한 다르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기도 하고, 여자가 되려는 남자도 있고, 남자가 여자처럼 살기도 한다. 하지만 주위에는 남자와 여자만 있는 것 같다. 세상의 편견에 자신을 꽁꽁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모든 걸 떠나서, 이 뮤지컬은 드랙퀸들의 특별한 쇼와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굉장한 호기심을 부른다. 게다가 진솔한 마음을 담은 연기와 노래, 귀에 익숙한 팝뮤직 등이 흘러나와 흥을 돋운다. ‘드랙퀸’은 소재만큼이나 본능을 자극하는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이다.
드랙퀸은 여성 복장을 하고 음악과 댄스, 립싱크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남자다. 이들이 하는 ‘드랙퀸쇼’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적 소수자 그룹에서 유행하는 쇼 문화다. 서구권에서는 드랙퀸들의 프로페셔널함과 도도함, 그리고 당당한 매력이 돋보이는 ‘드랙퀸 스타일’이 패션 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인정받고 있다.
뮤지컬 드랙퀸은 여장 남자들의 다이내믹한 일상을 통해 ‘다름’의 경계를 해체한다. 그것은 남자, 여자, 트랜스젠더와 같은 생식기(Sexual Organs)의 의미도 아니고 게이, 레즈비언, 바이와 같은 성정체성(Sexual Identity)의 문제도 아니다. 이 뮤지컬은 사람들의 오만과 차별, 다름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갈등 구조로 놓고, 갈등이 화해되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남자 같지 않은 남자’, ‘동성애자’라는 소재부터 거리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뮤지컬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화려한 춤과 음악, 마음을 들뜨게 하는 쇼가 눈심지를 돋운다. 또 단순히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한 자아를 찾아가는 인간의 방황에 동화시키면서, 이들이 외치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권리에 대해 진심으로 동감하게 만든다. 그리고선 이 뮤지컬은 관객들에게 에둘러 묻는다. ‘다르다’는 게 무엇이기에 그토록 아픔을 줄 수 있는지, 당신에게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재단할 권리가 있는지 질문한다. 학력, 재력, 경력 등 배경과 겉모양만 추종하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한쪽 맘 구석에 씁쓸한 기분도 젖어든다. 그래도 드랙퀸이 싫거나 아니라면 그만이다. 대신 욕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 이상은 폭력이다. 완력으로 억누르고 무기로 제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그러다 보면 끝없는 대립과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퍼붓는 온갖 욕설과 저주는 스스로 인격을 낮추는 행동이자, 천박한 인간성의 표출이다.
이 뮤지컬은 재밌고 흥겹다. 천연덕스러운 배우들의 연기, 꼼꼼하고 섬세한 무대연출, 리얼한 쇼와 음악이 뒤엉키면서 만들어내는 볼거리는 놀랄만한 흥분을 선사한다. 특히 이 뮤지컬은 ‘느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을 드랙퀸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힘겨운 현실을 웃음으로 변용하는 감동 때문이겠지만 이 뮤지컬만이 지닌 독창성과 표현력은 그 이상이다.
마지막 부분은 지친 삶을 지탱시키는 힘의 실체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주위를 둘러보면서 사는 따뜻한 마음이다.
동성애자를 혐오했던 한 남자는 여장을 하고 드랙퀸들과 함께 공연한다. 거짓으로 치장된 자아를 용기 있게 응시하면서 과장된 삶의 요소들을 벗어버리고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선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권리에 대한 메시지를 한 곡의 노래로 전달한다. 설득력 있는 반전이다.
이 뮤지컬을 얘기할 때 하리수를 제외할 수 없다. 훌륭하고 재능 있는 배우들도 많았을 테지만 그녀가 있어서 이 뮤지컬의 클라이맥스는 더욱 빛났다. 그녀의 유명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녀가 과거에 가졌던 삶의 무게와 경험은 이 뮤지컬에서 그대로 녹아들어 차곡차곡 쌓여있다. 하리수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완전한 여자가 되기까지의 인생이 어쩌면 이 뮤지컬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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