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객석과 무대

[넌버벌 퍼포먼스] 월드비트 비나리 - 만복을 비는 음악 신내림

이동권 2022. 9. 29. 20:01

월드비트 비나리


삶은 모순덩어리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오히려 인간은 더 상처받고 아픔을 겪는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괴로움도 모두 이 때문에 만들어진다. 그럴 때는 가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종의 ‘살풀이’라고 보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등산이, 누군가에게는 영화가, 또 누군가에게는 음주가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 편의 감동적인 공연도 특효약이 된다.

월드비트 비나리. 세계가 감동한 한국의 공연이다. 10여 년간 53개국을 돌며 세계인들의 극찬을 받았다. 어쩌면 월드비트 비나리는 동양의 문화를 만나본 적이 없는 세계인들에게 ‘새롭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플러스가 됐을 것이다. 문제는 전통문화가 본토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월드비트 비나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공연은 여러 개의 타악기를 비롯한 장고, 태평소, 대금, 갖가지 개량악기들이 절묘한 하모니를 연출하며 관객들의 정신을 단박에 빼버린다. 또 공연자들의 화려한 무대매너와 역동적인 기운, 성악과 영상을 접목시킨 ‘새로운 형식’은 신묘한 매력마저 느끼게 한다.

월드비트 비나리의 ‘새로운 형식’에 대해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이 공연은 가슴을 뒤흔드는 음악과 함께 투명 스크린에 판타지 같은 영상이 쏟아지면서 절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영상에는 한 폭의 동양화가 흐르고, 그 영상 안에서 희망을 가득 품은 수천 마리의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또 공연 도중에 무대 양 옆으로 쏟아지는 여러 영상들은 공연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어떻게 보면 신성한 종교의식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월드비트 비나리를 보고 있으면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불교적인 색채, 동양적인 색채가 강해서이기도 하고, ‘만복을 비는’ 내용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고집멸도는 인생의 괴로움(고),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집), 번뇌에서 벗어난 열반(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도)을 뜻하는 말이다.

고로 우리가 복을 빌어 얻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진정한 행복이다. 그럼 욕망과 상처로 얼룩진 삶을 치유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에 삶에 바치는 것이 아닐까. 월드비트 비나리가 말하려는 내용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이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나비 퍼포먼스’다. 객석 뒤편에서 육감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실사로 만들어진 나비가 날아온다. 객석을 무대처럼 이용하는 연출법은 자주 봐 왔지만 이토록 완성도 높게 연출된 도입부는 처음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이다.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연주 실력은 물론이고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연주자의 얼굴 표정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공연 횟수가 거듭될수록 관성화되고 매너리즘에 빠지면 얼굴 표정부터 달라지게 된다. 

월드비트 비나리는에서 ‘비나리’는 순우리말로 ‘앞길의 행복을 비는 말을 하다’는 뜻이다. 공연도 관객들의 복을 비는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우리 조상들이 굿을 하고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한 것처럼 인간의 마음을 달래주는 동시에 폭발적인 퍼포먼스로 답답한 가슴을 비워준다.

월드비트 비나리는 첫 서막을 여는 ‘소원풀이’ 세리머니에 이어 성공기원, 사랑기원, 건강기원으로 이어진다. 성공기원에서는 어서 소원을 성취하라는 ‘사바하’, 무엇이든 잘되기를 바라는 ‘승승장구’, 만선과 풍요를 노래하는 ‘뱃놀이’ 등이 펼쳐지고 사랑기원에서는 황진이의 시를 배경으로 한 ‘상사몽’과, 진실한 사랑을 믿고 기다리는 이들을 위한 ‘임이 심은 매화나무’가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건강기원에서는 닫힌 마음을 열라는 ‘열고’, 오복을 부르는 북소리 ‘오고타’, 막힌 기운을 푸는 ‘맥놀이’ 등 신나는 곡들이 공연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순전히 내  취향일지 모르지만 연주자들이 여러 가지 추임새를 따라하도록 관객들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두 번이면 족하고,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쥐어짜는 것은 부담스럽다. 흥에 겨워 ‘환장’하는 것은 반기지만 너무 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