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 LP전문음악감상사이트 ‘퐁키’ 대표는 옛 노래에 대한 애착이 뚝뚝 떨어지는 사람이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8·15광복, 70년대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한 노래를 들려주면서, 자신도 이러한 정신이 우리의 문화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 경주할 계획이다. (퐁키는 현재 운영되지 않는다.)
“한류라고 하면서 지금의 음악만 지원한다. 하지만 그 뿌리에는 우리 초기 음악이 있었고, 그것이 발전한 게 지금의 음악이다. 정부에서도 옛 노래를 발전 계승하는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옛 노래는 한민족의 정서로 가득하다. 엔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들 하는데 의미 없는 얘기다. 조선시대 음악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우리 음악이 아니냐. 얼마나 위안과 감동을 줬고,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데 얼마나 도움을 줬는가가 중요하다. 온 가족이 즐겨 달라. 퐁키를 들으면 재미있는 역사공부도 가능하다.”
김 대표는 한때 전국의 옛 노래 애호가들과 교포들까지 자주 들러 향수에 젖게 만들었던 옛 노래 전문 사이트 ‘가요 114’의 개설자였다.
“처음에 가요 114는 70~80년대 음악을 서비스했다. 그러다 보니 대중음악 마니아, 전문가, 학자들이 모였고, 점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콘텐츠를 구축했다. 한국의 유행가, 음반산업, 당시 사회문화 분위기 등에 대해서 정보교류도 하고 세미나도 자주 했다.”
가요 114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2년간 운영되다 재정난으로 중지됐다. 가요114가 없어지자 난리가 났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충격을 받았다. 김 대표는 그런 어르신들을 생각하면서 의무감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가요 114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LP전문음악감상 사이트를 개설했다.
김광우 대표는 음원 복각 방면에서 이미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다. 그는 남인수, 이난영, 백년설, 동편제 등 20여 종의 CD 음반으로 유성기 음원을 복각했고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을 문화원형으로 디지털화한 바 있다.
‘음원 복각’은 옛 SP나 LP음반을 CD에 담아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그리 입맛 당기는 사업은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반이나 음원이 잘 팔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음반업계가 어려울 때는 복각 음반을 만들기 더욱 어렵다. 1990년대 옛 노래 복각 작업이 제법 활발해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시리즈나 ‘빅터 유성기 원반’ 시리즈 같은 성과가 나왔다. 하지만 2000년에 발매된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2’ 이후에는 제대로 된 대중가요 복각 음반이 나오지 않았다.
김 대표가 문화원형으로 디지털화 한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은 대중가요의 역사를 좀 알아야 이해가 쉽다.
오케레코드는 일본의 제국축음기상회 경성지부장으로 임명된 이철이 1933년 세운 한국 최초의 음반회사다. 일제 강점기의 대형 음반 회사로는 오케레코드와 콜럼비아레코드, 빅타레코드, 포리돌레코드, 태평레코드 등 다섯 군데가 있었다. 오케레코드에서는 고복수, 손목인, 이난영, 김정구, 남인수, 이화자, 장세정, 이인권, 조명암, 박향림 등이 활동했고, 1935년 발표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오케레코드는 1933년부터 소속 음악가들로 조직된 연주단을 꾸려 전국 각지는 물론 만주, 일본을 순회했고, 1938년에는 ‘오케 그랜드쇼’라는 이름을 걸고 더욱 다채로운 대규모 무대를 선보였다. 이 악단이 바로 조선악극단이다. 조선악극단의 일본 진출 성공은 일본영화 출연으로 이어졌고, 1939년 5월 1일에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에 특별출연 형식으로 조선악극단의 공연 장면이 삽입됐다. 이러한 기록은 당시 신문 기사와 광고를 통해서만 확인됐다.
김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원형 창작 소개 개발 사업’ 지원 과제로 선정한 ‘노래 조선'을 향한 모던보이 이철의 꿈 -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에 자료 발굴·정리 분야로 참여해 조선악극단 전속 C.M.C악단, 기타 조선악극단 멤버들이 ‘돈타령’, ‘새날이 밝아 오네’ 등 신민요를 공연하는 장면을 복원했다. 현존하는 대중음악 관련 영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자료다.
“당시 음반 복각 작업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제일 잘했다. 해외에서부터 자료를 수집해 정리할 정도였다. 또 조선악극단 작업 같은 경우도 KBS 한국의 유산에서 조선악극단을 다룰 때 우리가 발굴한 자료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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