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김준기 감독 - 위안부 문제, 자손된 도리로 무척 부끄러운 일

이동권 2022. 10. 3. 21:27

김준기 소녀이야기 감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정서운 할머니의 한 많은 목소리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병약하고 노쇠해진 음성에서 쉴 새 없이 오욕의 피가 뚝뚝 떨어진다.

 

“개 한 마리 죽으면 갖다 묻어버리듯이 그랬지. 장례식이 어딨노. 거기서 …. 목숨만 부지하자. 목숨만 살면 내 몸을 빼앗아가도 내 마음만은 안 빼앗아간다. 그런 정신으로 내가 살았지.”

마음이 아파온다.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가슴이 떨려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개돼지만도 못한 현실 앞에서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키는 소녀의 흔들리는 얼굴. 도저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정 할머니의 맘속에 스며든 상처가 얼마나 큰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영화 ‘소녀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로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끌려간 故정서운 할머니의 인터뷰 육성을 그대로 사용해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소녀 시절 정 할머니는 일본에서 2~3년만 일하면 억울하게 일본인에게 끌려간 아버지의 옥살이를 면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떠나기를 결심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주재소에서 나오지 못한 채 죽었고, 자신은 전쟁터에 끌려가 일본군들의 노리개가 되고 말았다.

언어와 피부색은 달라도 똑같이 인간의 피는 흐른다. 세계인들은 ‘소녀이야기’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Cartoons On The Bay Educational and Social Issues File’ 부문,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수상했고, ‘브라질 Animamundi’, ‘싱가포르 SIGGRAPH ASIA 2012’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공식 초정됐다.

“프랑스 안시에서 직접 해외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인데, 대부분 애니메이션이 웃음을 담고 있죠. 하지만 제 작품은 상영 후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일본 삿포르 단편 영화제에서도 상영됐는데 상영시간 내내 숨소리도 없이 조용하다가 크레딧이 올라갈 때 큰 박수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가져온 슬픔에 공감합니다. 일본인들이라고 야유를 퍼붓거나 상영을 중지하라고 고함을 치는 우익 성향의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면 이런 근대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표류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월은 흘러 이 영화 속 소녀는 할머니가 됐다. 그러나 할머니는 2004년 하늘나라로 갔다. 끝내 그 고통의 한을 풀지 못하고 할미꽃이 됐다.

영화 ‘소녀이야기’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사용해 제작한 만화책이다.

“이전에도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왔지만 작업물을 책으로 출간했으면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소녀이야기는 내용과 주제가 다른 단편 영상물과는 달랐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교육적 목적을 담은 책으로 출간을 하자고 연락을 줬습니다. 처음에는 정서운 할머님의 육성이 중요한 영상인데 책으로 과연 적합할까라는 생각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알리자는 취지를 살려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고 실제 책을 받아 들었을 때 무척 뿌듯했습니다. 실제로 책을 보니 영상은 11분가량으로 짧지만 책은 독자들이 읽을 때는 좀 더 길게 생각할 시간이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또 단편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는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접근이 용이한 서적이라면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좋은 장점과 느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은 위안부 피해자 故 정서운 할머니 얘기를 영화로 풀어냈다. 그가 정 할머니의 얘기를 다룬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다. 그는 영화 기획상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실제 육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막연히 인터뷰를 하겠다고 생각만 하고 ‘정대협’에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되돌아오는 답은 석연치 않았다. 처음 보는 남자가 할머니를 찾아가 그때 경험을 또 얘기해 달라고 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1990년대 정대협이 녹취 작업을 해 놓은 파일들을 검토하게 됐고, 그 중에서 녹음 상태가 좋고 경험을 사건 위주로 설명해 준 정서운 할머님의 육성을 위안부 할머니를 대표해 선택하게 됐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 속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 아직 살아계신 분들이 나라가 힘이 없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지옥 같은 경험입니다. 지금의 풍족함은 그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의 덕입니다. 자손 된 도리로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해 드리지 못하고 그분들에게 웃음을 안겨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부끄러운 일입니다. 위안부 문제와 일본과의 해결되지 못한 근대사의 문제는 우리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개인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아주 작은 의견과 행동을 내놓는다면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정말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우선은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게 시작인 것 같습니다.

책도 영화처럼 전문가들의 손길은 필요하다. 전문 편집자가 붙어 그의 책에 숨을 불어 넣었다.책 ‘소녀이야기’를 보면 중간중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심화 학습을 위해서는 매우 좋은 자료다.

“영상에서는 할머님의 육성이 그대로 쓰여서 문제가 없었는데 본문에서는 할머님의 육성을 글로 옮겨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할머님의 말씀을 책으로 옮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중간에 시대적 이해를 돕기 위해 출판사 분들이 꼭 필요한 내용을 추가해 주셨습니다. 그 추가된 내용이 소녀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도 좋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외의 내용은 정서운 할머님의 경험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 위주로 나열하기 위해 신경 썼습니다.”

김준기 감독은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했다. 보통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면 순수미술이나 상업미술을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는 만화에 뛰어들었다. 1990년 초반만 해도 만화를 하겠다고 나서는 학생은 매우 드물었다. 그의 사연도 평범하지는 않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보통 사람들 보다는 특히 좀 더 좋아했습니다. 그림도 낙서를 남들보다 좀 더 잘하는 수준이었지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과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해서 실제 그림을 공부했던 적은 없었는데 대학에, 화학공학과를 지원했다가 떨어진 뒤 재수도 않고 취업을 하려는데 아버지가 억지로 만화과에 시험을 보게 했습니다. 그때는 유일하게 공주에 만화과가 있어서 공주로 가게 됐습니다.”

예술의 모든 장르가 그렇겠지만 만화는 무척 고된 작업이다. 그는 아버지 때문에 시작한 만화였지만 크게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솔직히 크게 후회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꿈을 꾸고, 하고 싶은 게 많은 행복한 고됨이니까요. 다른 어떤 직업과도 바꾸기는 싫습니다. 실제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정을 꾸리기에 불가능한 수입이 한탄스럽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존경스러운 인생 역전을 이룬 위인들만큼 어려운 상황을 겪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가장 고맙습니다.”

소녀이야기는 3D애니메이션이다. 만화와는 또 다른 분야다. 그는 애초에 만화를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다 보니 손으로 그리는 그림과 좀 멀어지게 됐다. 그러다가 3D 툴을 배우게 됐고, 혼자 컴퓨터로 애니메이션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게 됐다.

그는 2001년에는 ‘등대지기’라는 단편을 완성했고, 2003년에는 ‘인생’, 2005년에는 ‘룸:The Room’이라는 단편을 창작했다. 2006년에는 장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로 시나리오 대상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이 상업 쪽과 맞지 않아 2008년부터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소녀이야기’ 작업했다.

“‘인생’이라는 작품이 가장 상도 많이 탔고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30대 초에 인생을 논했다는 게 좀 주제넘어 보이기도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에 인생을 비유적으로 담아서 해외에서도 호응이 좋았습니다. 이제까지는 ‘인생’을 만든 작가였지만 이제는 ‘소녀이야기’를 만든 작가로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