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양성관 소설가, 의사 - 소설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이동권 2022. 10. 3. 20:41

양성관 소설가, 의사


의사 출신 소설가들이 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은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그는 병원을 배경으로, 비인간적인 임상실험이나 거대 제약회사의 음모 등을 주제로 소설을 썼다. 의학 소설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없는 분야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자신이 의사이기 때문에 강점이 있었다. 의학지식도 해박하고 접근하기도 쉬웠다.

양성관 작가도 의사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의학 분야의 소설을 기대했다. 여느 작가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신뢰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의학 분야의 글을 쓰지 않았다. 첫 소설은 ‘다문화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글을 쓰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책을 읽게 됐는데 그 양이 상당히 쌓이다 보니 나도 한 번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은 생각 없이 나오지만 글은 좀 더 생각하고 다듬어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의학 분야의 소설은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아직은 부족하다. 경험을 쌓은 뒤 사회적인 의학 문제를 얘기해보려고 한다. 요즘 의학이 발달해 치료는 잘 하지만 환자들의 만족도는 확 떨어졌다.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들을 다뤄보고 싶다.”

소설 ‘시선, 어느 혼혈아의 마지막 하루’는 10~15년 뒤의 미래를 그린 묵시록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김배남은 베트남 여성 우웬 하이앤과 농부 김영철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김배남은 자신을 낳고 도망간 엄마, 폭력적인 아버지, 혼혈아인 손자가 못마땅한 할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다. 또 학교·군대에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멸시를 받았다. 이유는 단 하나, ‘혼혈아’였다. 

대놓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운 잡종새끼’라며 땅에 침을 뱉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 손가락질하며 나를 쫓아다니는 아이들, 나에게서 마치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것처럼 코를 잡고는 피해 가는 사람들이다. 

김배남은 한국에서 태어나 우리말을 쓰고, 한국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이방인이었다. 피부색과 어딘지 모르게 다른 외모 때문이다. 그는 철저한 고립과 소외 속에서 열등감을 털어내는 방법을 찾았고, 방화에 이어 살인까지 저질렀다. 여성의 목을 조르고, 겁에 질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까지 느꼈다.

양성관 작가가 이처럼 참혹한 줄거리의 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보건지소에서 군 복무를 할 때 임신한 베트남 며느리와 함께 온 할머니가 ‘자식이 어머니를 닮으면 안 되는데’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 혼혈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편견과 선입견이 느껴져서다. (이 이야기는 그의 책 ‘생초보 의사의 생비량 이야기’를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다.) 특히 다문화가정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덜컥 겁이 났다.

“초등학생 건강검진을 했다. 1학년 아이가 아파서 울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없다. 한국말을 할 줄 몰랐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캄보디아에서 와 말을 못 한다고 하더라. 결혼한 지 2개월 된 여성도 아프다고 왔는데 의사소통이 안 됐다. 남편과 시어머니와도 말이 안 통하니 얼마나 외롭겠나. 시간이 지나면 도망가는 여성이 생긴다. 젊으니까.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문제다. 소설 속 이야기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국제결혼이 유행처럼 번지던 2000년 무렵. 수많은 시골 노총각들이 신붓감을 찾아 먼 타국으로 날아갔다. 이들은 적게는 예닐곱 살, 많게는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신부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총각들이 대다수였다. 건실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직에 알코올중독자도 있었고, 하루 벌어먹고사는 일용직도 상당수였다. 심지어 지체장애인도 있었다.

동남아계 여성과 결혼한 다문화가정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 아이들이 어느덧 자라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가 됐다. 일찍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아이들은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피부색과 얼굴이 확연하게 다른 경우에는 눈총과 놀림에 자존감마저 잃어버리고 사는 아이들도 있었다.

10~15년 후,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양성관 작가는 그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최악의 결과를 유추해보면서 현실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다문화가정들은 경제적으로 어렵다. 공부는 물론 언어도 문제다. 농촌에 살면 할 게 없다. 운동도 하고, 악기도 해봐야 하는데 학원에 다닐 수도 없다. 재능을 발견할 수 없으면 미래가 없지 않나. 10~15년 후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올 때 아이들에게 주어진 삶이 몇 가지나 되겠나. 하지만 돕고 싶다, 불쌍하다는 식의 접근도 위험하다. 경멸, 차별적인 시선, 동정의 눈빛 안 된다. 이 아이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결국 우리 모두의 일인데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잊어버린다. 미리 깨달으면 좋겠다. 겪고 나서 해결하자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해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많다. 당연히 이 소설의 주인공 김배남처럼 혼혈아도 많아졌다. 우리는 이들이 자라면서 느끼는 이질감과 소외감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었을까. 아니, 호기심 혹은 조롱하는 눈빛, 동정심으로 바라본 적은 없었을까. 우리 사회 면면을 보면 스스로 가해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힘들 듯싶다.

양성관 작가는 변호사의 입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마음만 느껴질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변호사 통해서 했다. 2005년 프랑스 폭동은 이민자 2세들이 일으켰다. 이민자 1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갔다. 차별을 당해도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견뎠다. 하지만 이민자 2세는 다르다.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분노하는 거다. 한국은 어떻게 될까? 이 소설, 우울하다. 독자들이 소설을 보고 충격을 받고, 두려움을 갖길 원한다. 그래야 지금의 현실을 바꾸려고 할 것 아니냐. 내가 예측하는 미래는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소설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