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황대권 생명평화운동가 - 나를 바라보면서 원인 찾아라

이동권 2022. 10. 3. 19:24

황대권 생명평화운동가


황대권 생명평화운동가는 미국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고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남영동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을 무렵이다. 2001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극으로 밝혀지면서 그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널리 밝혀졌지만 그때는 이미 황금 같은 청춘 13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후였다.

 

황대권은 ‘간첩단 사건’으로 잡혀갈 당시 60일 동안의 모진 고문과 온몸과 팔마저 묶어 가두는 두 달간의 징벌방 생활로 두 번의 죽음을 체험했다. 황대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보다는 이미 국외에서 더 많이 알려졌고, 2001년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40주년 기념 달력 1월의 인물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황대권은 감옥에서 쓴 ‘야생초 편지’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와 두 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눴다. 여기에는 내용을 짧게 정리해 올린다.)

‘멘붕’의 시대다. 사소한 일에도 ‘멘붕’이라고 난리다. 직장 상사 때문에 ‘멘붕’, 동네 옆집 아줌마 때문에 ‘멘붕’, 친구들하고 정치 얘기를 하다 ‘멘붕’, 조금만 의견 충돌에도 ‘멘붕’. 심지어 자기 관념대로 되지 않는 모든 일에 ‘멘붕’이라고 얘기한다. 어느새 내린 눈 때문일까. 비둘기도 ‘멘붕’에 빠진 것 같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나지막한 건물 꼭대기에 ‘멍’ 때리고 앉아 있다.

황대권 생명평화운동가는 그 원인이 ‘나’를 보지 않고 바깥에서만 원인을 찾아서란다. 인간은 혼자 삶을 영위하는 개체지만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 자기 자신과 함께 주위에 있는 가족, 이웃, 마을, 국가, 민족을 둘러보면 ‘멘붕’은 다소 줄어든다는 말이겠다. 여기저기에서 난무하는 ‘멘붕’ 타령에 ‘멘붕’당하지 않으려면 꼭 참고할만한 얘기다.

우스갯소리지만 황대권도 18대 대선 때 ‘멘붕’ 비슷한 것을 겪었다. 정확히 말해서 ‘멘붕’이 아니라 ‘깊은 사색’이다. 

“어머니가 박근혜를 찍었다. 아들이 박정희 때문에 고생하고, 그 졸개한테 그렇게 당했는데도 어머니는 박근혜를 찍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 대개 젊은 시절 사회운동을 하다보면 자기 문제는 떼놓고 사회변화만 보게 되니까 좌절하고, ‘멘붕’이 오고, 방황하게 된다. 세계 변화랑 나의 변화가 같이 가면서 균형을 찾는 것, 혁명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혁명, 그것이 바로 도올이 얘기하는 중용이다. 그러다가 ‘해봐야 소용이 없구나.’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현실 타협에 들어가거나 소시민으로 살게 된다. 70~80년대 열렬한 운동가들 80~90%는 다 그렇게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이번에 50대가 돼서 박근혜 찍은 거 아니냐.

그의 얘기는 멘붕을 당하지 않는 마음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한다.

"나는 80년대부터 해온 운동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회를 바꾸려면 거기서 벗어나야 된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을 해야 한다.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데 거기에 맞서서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면 되겠나. 불을 보듯 뻔한 건데. 내가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다. 생명평화운동은 자기 수행이 굉장히 중심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진영논리에 갇힌 사회에서 자라오고 교육을 받았다. 내가 바뀌어야 할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그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부하고, 조직하고, 사회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너도 나도 이런 생각으로 사회생활하면 계속 분열하고, 사회는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질 것이다. 기득권들이 사회의 핵심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기득권들은 자기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대다수 민중들은 주변으로 계속 밀려나고 있다. 자본의 운동방식은 민중들을 끊임없이 주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을 잉여인간으로 만들고, 복지대상으로 만든다. 복지국가라는 말이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그것은 2등 시민으로 만드는 거고,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거다. 자본이 돈을 벌어서 니들은 요거만 먹고 죽은 듯 살고 있어라 이런 게 지금 대부분 복지정책이다. 그런데 우리 민중들은 (대선을 통해 봤을 때) 물질문명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진보세력이 아니라 보수 세력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