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남이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냥 훈훈하다. 꼭 얼굴이 잘생겨서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전세훈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는 단지 쓰디쓴 인생을 핥으며 사는 ‘연극배우’가 아니다. 쓰디쓴 인생을 가슴으로 흡수해 희망으로 만들어내는 ‘문예운동가’다.
젊음은 ‘타는 목마름’이다. 가슴속에 품은 열정에 따라 길의 온도도 달라진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굳게 닫혀 있는 미지의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취직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집을 키우면서……. 정주의 본능을 쫓으며 산다.
전세훈은 미지의 문을 열고 나왔다. 힘들다면 잔소리다. 모두들 혀를 내두르는 연극배우로, 문예운동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오래된 수목들로 가득 차 녹음이 진동하는 정원이 아니다. ‘나’보다는 ‘너’와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정글이다. 노을과 같이 뜨거운 열정이 없다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길. 그는 왜 연극배우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대학에서 노래패 활동을 했어요. 사회에 나가서도 문예운동을 하고 싶었죠.. 가극단 미래는 선배들이 만든 예술단체에요. 연기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 운동하고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어요. 연극은 가극단 미래에 와서 처음 했어요.(웃음)”
가극단 미래는 단원들의 ‘마음’을 중요시한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도 함께할 마음만 있다면 손을 내민다. 연기나 춤은 배우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극단 미래에는 풍물패, 탈패, 노래패 활동을 했던 사람을 비롯해 문예 활동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뜻을 가지고 모여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가치에 두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돼야 한다. 가극단 미래는 이 문제를 아직까지 시원하게 풀지는 못했다. 전세훈도 생계를 위해 따로 알바를 하고 있다.
“기타를 치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레슨을 하죠. 배우들 대부분 생업이 있어서 스케줄이 모두 달라요. 기동적으로 활동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여태까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이제는 체질 개선을 해보려고 해요. 적자가 나더라도 공연을 해보려고요. 그런데 쉽지 않네요. 제작비를 마련하는 것도 어렵고 배우들 일정 맞추는 것도요.”
가극단 미래는 전문적으로 공연을 하는 단체다. 메시지나 관객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소양과 실력을 갖추고, 더 좋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전세훈도 배우로서 연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하루 기분이 달라진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었던 그에게 연기는 일종의 도전이었고, 늘 걱정거리였다. 지금은 자신이 자기 연기에 만족했을 때 메시지 전달도, 관객의 반응도 좋다는 것을 알만큼 성장했다.
“처음에 배우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하지만 순수 연극집단에서 연기를 배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순수 연극집단에서 연기하는 전공자들하고 경쟁했을 때 역량은 부족하겠지만 가극단 미래에서 할 수 있는 일 따로, 순수 예술집단에서 할 수 있는 일 따로입니다. 과연 순수 예술집단이 우리만큼 직설적으로 사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는 가극단 미래가 최고입니다.”
한때 가극단 미래에는 낯설고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2008년 9월 ‘오하나’라는 작품을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국가보안법 혐의로 가극단 미래 사무실과 대표의 집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단원들 모두 공연하느라 사무실을 비워뒀을 때 갑자기 공안당국이 들이닥쳐 털어갔다. 당시 단원들은 잡혀가면 공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찜질방을 전전하면서 공연을 마쳤다.
가극단 미래는 요동이 없었다. 모두들 이미 직·간접적으로 경험이 있어서다. 그도 많이 겪어본 일이라 당황하지 않았다.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이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압수수색을 한 공안당국에 불만만 가득했을 뿐이다. 이러한 마음들은 극을 무대에 올릴 때도 똑같다. 단원들 간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모두들 정치적인 입장이 일치가 돼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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