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영화는 마니아가 있다. 나는 마니아가 아니다. 팀 버튼 영화를 모두 다 좋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크리스마스 악몽’, ‘유령신부’ 같은 영화는 훌륭한 평에도 불구하고 별로였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 ‘찰리와 초콜릿공장’은 볼만 했고, ‘스위니 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나 ‘가위손’에는 열광했다. ‘프랑켄위니’는 어느 정도일까? 중간쯤 되는 것 같다. 팀 버튼 마니아라면 좋아하겠지만 영화로서만 보면 무난했다.
그런데도 나는 팀 버튼의 영화를 계속 보게 된다. 그의 영화가 ‘고혹적’이기 때문이다. 음산한 분위기, 사람이나 사물이 지니는 독특한 느낌, 그리고 예상치 못한 스토리는 기대 이상의 흥분을 준다. 또 폐부를 조여 오는 음악은 영화의 감동을 한층 더 높인다. 영화 ‘프랑켄위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뻔한 스토리의 영화인데도 여러 번 입을 쫙쫙 벌어지게 만들었다.
‘프랑켄위니’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 같지만 호러감이 있다. 전반적으로 흐르는 으스스한 분위기는 극도의 몰입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3D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여러 번 손이 가야 한다.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하니 말 다했다. 거기에다 이 영화는 여러 3D영화와는 좀 다르다. 흑백 영상인 데다 캐릭터들이 예쁘지 않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가 다 그렇지만) 흰자위에 검은 점만 찍어 놓은 것 같은 작은 눈동자는 그야말로 비호감이다. 그런데도 호기심을 일게 하는 이유는 오버스러움이 갖는 독특한 코믹 코드 때문이다.
원래 ‘프랑켄위니’는 팀 버튼 감독이 1984년 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할 때 만든 29분짜리 실사 단편영화였다. 그런데 디즈니는 이 영화의 분위기가 어둡고 음산하다는 이유로 외면해버렸다. 하지만 영화 ‘배트맨’이 대히트를 기록하자 디즈니는 팀 버튼의 이름을 팔아서 ‘프랑켄위니’를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성공이었다. 돈만 되면 마인드까지도 바꿔 버리는 할리우드 비즈니스의 실체를 알게 해주는 사례다.
이 영화의 내용은 아주 풋풋하고 그럴싸하다. 천재 과학 소년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교통사고로 죽은 애완견 ‘스파키’를 천둥번개로 되살리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그렸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사랑하는 애완견과의 이별을 아파하는 순수한 마음이 영화에 그대로 담겼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도가 지나쳐 ‘무분별한 생명 살리기’로 가버린다. 그러면서 생명에 대한 의미,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퇴색되고 욕망이 번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려고 한 것일까.
그것은 진실한 사랑이다. 환상과 쾌락에의 질주는 오히려 사랑의 의미를 반감시킨다. 사랑하는 대상이 죽거나 사랑의 행위가 소멸된 뒤 얻게 되는 더 큰 의미, 깨끗하게 이별을 인정하고 현실에서 소중하게 추억해내는 것이 더욱 진실한 사랑에 가깝다고 말한다. 사랑이든, 행복이든 현실 속에 함께 호흡하고 녹아있기 때문에 과거에 집착하다 보면 삶을 망친다.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사랑과 행복은 모두 자신에게 비롯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똑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사랑이나 행복은 철저히 독립돼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나 희망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돼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 빅터는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순진한 마음에 빈 것을 채우려고 들었다. 팀 버튼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처음에는 동조하다가 나중에는 주인공들의 맹랑함과 허무함을 명확하게 꼬집는다.
빅터는 부질없는 욕망을 버린다. 그리고 행복 따위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욕망의 비상구를 빠져나와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 어린 나이지만 무수한 욕망들이 자신을 잃게 하고 인생을 허비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 번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볼 만한 ‘사랑의 의미’이자 ‘삶의 가치’다.
빅터의 엄마는 애완견 스파키를 잃고 울고 있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위대한 대사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릴 떠나지 않아. 평생 네 마음속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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