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래 그 영화

해연호텔 블루 - 끊임없이 깨어 있으라, 와카마츠 코지 감독 2012년작

이동권 2022. 10. 2. 21:22

해연호텔 블루, 와카마츠 코지 감독 2012년작


일본의 거장,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 '해연호텔 블루'는 삐뚤어진 결과로 치닫고 마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그렸다. 욕구와 목적이 만들어낸 조바심과 의구심이 파멸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선과 악이 대립하지 않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욕망을 멈추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왠지 모르게 이 영화의 주제는 다소 식상한 면이 있다.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끌어내 표현하는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연출력은 역시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6년 전 와카마츠 코지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나에게 권력에 대한 혐오감, 전쟁에 대한 반감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어 감독이 됐다고 말했다. 또 점점 쇠락해가는 일본 내 좌파 혁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털어놓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강력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 인간의 욕망을 화두로 꺼내놓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60~70년대를 살았던 일본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의 분노를 대신 풀어줬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느낌 그대로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좀 더 많은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인간과 현실에 대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영화 '해연호텔 블루'는 최근 리얼리즘을 추구한 작품들과 다르게 1977년 그의 작품 '성모 관세음대보살'을 연상케 할 정도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 관습을 공격하는 도발성은 변치 않았다. 이 영화는 성과 폭력을 대변해왔던 그의 예술세계가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억눌린 욕망을 성적 판타지로 풀어낸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강박관념을 진지하게 쫓아가면서 부르주아 계급과 통상적인 윤리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마지막에는 도발적이고 섹시한 여성의 환영을 통해 '어리석은 인간'을 비웃으며 끊임없이 '깨어 있기'를 주문한다. 인간이 아닌 영적인 존재를 영화로 끌어 들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일본 영화의 거장이자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는 이들의 우상이었다. 특히 1971년 일본 혁명군 '사계협회'가 도쿄 총공격을 위해 미군기지를 습격한 사건을 그린 영화 '천사의 황홀'은 개봉 당시 신주쿠 트리폭탄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원 투쟁에 나선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6년 전 한국을 찾아 그의 영화를 대대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지만 그때에도 난해하고 기묘한 영상언어와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성적 묘사, 반체제적인 이미지 때문에 한국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되지는 못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음향과 대사처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마디로 '시' 같다. 어떤 때는 백납처럼 차갑고 음산하며, 어떤 때는 찬란하고 아름답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감성이 먼저 관객들에게 다가와 가슴을 떨리게 한다. 이번 영화에서 그의 팬을 자처하는 노이즈펑크 록그룹 '소닉유스'의 짐 올크가 담당한 영화음악도 영화 못지않게 백미다.

이 영화에는 배신자를 처단하려고 나선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묘령의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는 그녀와의 성적 판타지를 쫓는 여러 남자들과 함께 감정을 소진하면서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