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래 그 영화

무게 - 참혹한 세상에서 찾은 희망, 전규환 감독 2012년작

이동권 2022. 10. 2. 21:13

무게, 전규환 감독 2012년작


시체 닦는 꼽추, 꼽추와의 섹스를 열망하는 여청소부, 시체와 섹스하는 코끼리맨, 누드 트로키 모델 시체, 흉측한 얼굴 때문에 창녀에게까지 버림받는 아들을 바라보는 노파, 죽여버리겠다고 소리 지르는 인질극 남자, 길거리에서 엉덩이를 까고 미친 여자와 섹스하는 덩치남, 남자 생식기가 달린 여자, 동성애자, 여배우, 형사, 양엄마, 구급대원, 목사, 전도사, 신도, 의사, 수녀, 매춘부, 마약남, 외국인, 정육점 주인, 왈츠 추는 시체, 금니 시체, 상복 입은 여자, 사채업자 등등.

영화 '무게'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등장인물만 들여다봐도 말이 필요 없는 영화다. 그저 이 영화를 보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 비참한 심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소수자들이 우리 이웃에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이 영화를 만든 전규환 감독은 괴물이다. 차기작이 기대가 된다. 이 영화를 보면 전 감독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가 무엇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부제목은 '정 씨의 슬픈 이야기'다. 꼽추인 정 씨는 고아로 자라면서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다. 그저 사람들이 불러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시체를 닦으면서 여러 사람들의 삶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정 씨만큼이나 충격적이다. 거기에다 발가벗은 군상들을 여과 없이 화면에 표현하는 전 감독의 화법은 참으로 거침없다. 그냥 보고 있으면 입이 떡 벌어지고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시체들과 춤을 추는 장면은 캬~라는 탄식이 쏟아지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굉장히 동감이 간다. 판타스틱하거나 신비롭지 않다. 자연스럽게 영화에 동화가 되고, 영화 속 인물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영화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정적이고 불편한 화면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불쾌하거나 난해하지는 않다. 특히 빈틈없이 흐르는 내러티브는 마지막 크래딧이 올라가기까지 관객들을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삶이 끝나면 몸이 닦여져 화장터로 간다. 몸이 닦여질 때에는 빈부의 차이가 없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모두 발가벗겨져 닦인다. 게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장의사는 꼽추. 살았을 적에는 바보 병신이라고 놀렸을 법한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사라진다.

문제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낫다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시체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살아있는 자신의 모습도 시체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 죽은 뒤에는 더 이상 후회하거나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다. 참혹한 현실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불행하게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서 시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진실한 얼굴이다. 인간의 숙명은 세상의 온갖 풍파에 떠밀리고 휩쓸려 다니다가 죽음의 세계 위에 서게 된다. 다 탄 촛불처럼 꺼져 가면서 빛과 어둠을 지나 운명의 끝에 닿는다. 그리고 다시 재생의 바람이 되어 산 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때 인간은 가장 순수하게 된다.

주인공 정 씨는 화장터에서 산 채로 자신의 몸을 태운다. 타락과 소멸을 순수와 재생으로 이끌기 위해서 참혹한 현실을 죽음과 대체시킨다. 이 얼마나 끔찍하지만 아름다운 선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