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들판에서 자라는 야생화처럼 초연한 모습으로 피어 있다. 세상은 자꾸만 가벼워지고, 주위를 둘러보지도 못하게 차가워지지만 극단 아리랑은 새하얗게 반짝이는 불꽃으로 타오르면서 시커먼 먼지로 뒤덮인 하늘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이들은 뜻하지 않은 발길질에 마구 짓밟히고, 모진 풍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해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리랑은 1986년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이 창단한 민족극단이다. 그는 15년 동안 극단을 이끌다 국립극장장을 맡으면서부터 극단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화부 장관을 선배로 둔 까닭에 별의별 얘깃거리가 많을 듯싶다.
“김명곤 대표가 문화부 장관이 되면서 오히려 모든 걸 조심하게 됐어요. 남들이 ‘너네 뭐라도 생기지 않느냐’고 색안경을 쓰니 더욱 조심하게 됐죠.”
사실 김명곤 장관은 스크린쿼터 등의 문제로 좋지 않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차라리 장관 하지 말고 소신이나 지키지’라는 말들이 들려올 때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가 아는 선생님은 성격이 꼿꼿하고 변함없는 분이거든요. 지금도 우리는 그분을 믿고 있어요.”
단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상태였지만 창단 이후의 여정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숙연해지고 착잡하다.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요. 연습실도 생기고, 극장도 생기고, 옛날보다는 많이 안정됐습니다. 예전에는 대학생 관객들이 아리랑을 선호했고, 아리랑은 색깔 있는 극단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관객들은 의식이 없어요. 우리 극단이 민극협 소속인지도 몰라요. 특히 대학생 관객들이 뮤지컬로 옮겨가면서 큰 히트작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제는 극단도 많이 없어졌고 공연도 기획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극단 아리랑도 시대의 조류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듯했다. 새롭고 독창적인 공연을 계속 발굴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들에게는 창단 이후부터 지켜온 전통이 있다. 밥이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한솥밥을 먹는다. ‘밥 차려 먹을 시간에 차라리 작품에 공을 들이지’라는 얘기도 있었고, 대학로에서는 ‘아직도 밥을 지어먹느냐’고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한 식구처럼 같이 밥을 지어먹으며 무대에 서고 있다.
“함께 밥을 지어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힘이 커요. 우리처럼 스타 없는 극단을 이끌어가는 힘, 예술 공동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요.”
아리랑은 인간의 권력욕을 조망해보는 연극 ‘달수의 저지 가능한 상승’을 무대에 올린다. 무거운 주제의 작품은 시쳇말로 망하기 십상인 현실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대학로 관객들은 한때를 즐길 수 있는 고급 오락으로 연극을 찾고, 연극은 그런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 연극은 진지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용도 괜찮고..., 대선정국이잖아요.”
이 연극은 독일의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작품 ‘아르뜨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각색한 작품이다. 제목을 바꿔볼 만 한데 '아르뜨로 우이'라는 이름만 달수로 변했다.
“무거운 주제로 승부수를 띄웠다면 제목은 바로 드러나는 게 좋다고 생각해 토론을 거듭했죠. 하지만 ‘저지 가능한’이라는 문장을 대체할만한 단어가 없어 그냥 쓰기로 했어요.”
최근 극단 아리랑의 고민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할까다. 단순하게 재미만을 추구하는 극단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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