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괴상한 일들은 얼마든지 벌어진다. 항해 중이던 거대한 배가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하고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보통 이러한 일들은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기적’ 혹은 ‘불가사의’라고 부르며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 심각한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바로 ‘마술’이다. 예쁜 여인이 커다란 칼에 잘려 삼등분이 되거나 지지대도 없이 허공에 떠오르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혀를 내두르고 만다. 그 원인을 알지 못하니 마냥 당황스럽고도 신기해 저절로 박수를 치게 되며, 어느새 사람들은 동화 같은 마술에 빨려 들어가 잃어버렸던 동심을 발견하게 된다. 이 얼마나 멋지고 황홀한 예술인가.
“마술은 과학이 포함된 연기와 연출이에요. 19세기 시계수리공이었던 로베르후뎅이 만들었는데 그 당시 시계수리공은 뛰어난 과학자였죠. 그는 최초로 체스 두는 인형(로봇)을 만들었고, 공중부양술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이처럼 마술은 과학이며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기술이에요. 또 마술을 하다 보면 불가능한 게 없어요.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렸던 꿈과 희망을 찾아주죠. 마술을 하면 내성적인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어요.”
정성모 마술사를 만났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날렵한 모습으로 무대에 선 그는 위트 넘치는 말솜씨와 우아한 손놀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아이들을 무대로 불러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성모는 우연한 기회에 마술사 정하성 선생을 만나 마술을 배우게 됐다. 운명적인 만남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어렸을 적 추억이 인도했다고 정의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듯싶다.
“강원도 탄광촌이 제 고향이에요. 사방이 온통 검은색이었죠. 나무, 집, 냇물도 모두 검은색이에요. 하지만 1년에 몇 번씩 마술 같은 일이 벌어져요. 하얀 눈이 쌓이는 날이죠.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의 그 기분은 어른이 돼서도 잊을 수 없어요.”
이후 서울로 유학 온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군대에 다녀온 뒤 6개월 정도 시간이 남아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그의 꿈은 방송국 아나운서. 그는 케이블 TV에서 리포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응시해 취미 삼아 일을 시작했다.
“특이한 곳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맡았어요. 하루는 국내 최초로 마술학원인 에디슨 월드매직에 갔지요. 제가 선택한 카드가 눈앞에서 떠오르고, 구멍 난 돈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오더라고요. 실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술을 보니까 다른 세상을 느끼게 됐지요. 원장님께서 꿈이 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아나운서가 꿈이라고 말하니까 아나운서로 개인 토크쇼를 진행하려면 15년은 걸려야 한다며 남들이 배우지 않는 마술을 한다면 3년 안에 KBS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지요. 마술은 일인극이에요. 다른 공연과 달리 혼자 박수를 받을 수 있죠.”
정성모 마술사는 자신 같은 마술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딴따라라는 인식이 많아요. 사기꾼 취급을 하죠. 하지만 마술과 사기는 달라요. 사기는 다 끝나고 나면 나에게 이득이 생기지만, 마술은 상대방을 즐겁게 해줘요. 목적이 다르죠. 결혼하기도 힘들었어요. 장인, 장모를 이해시키기가 어려웠지요. 부모님께서도 3년 전까지 반대가 심하셨어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거든요.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다시 시작하라고 늘 말씀하셨고요. 하지만 3년 전부터는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세요. 산업 재해나 진폐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로하는 공연을 보시고 나서지요. 아이를 낳은 뒤 목표가 생겼어요. 마술사라는 직업을 당당하게 인정받은 거요.”
마술사는 관객들과 눈싸움에서 지지 않는 훈련을 받는다. 관객들의 기를 제압하지 못하면 마술사로서의 믿음이 쉬 깨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경기도 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세계평화축전’에서 휴전선을 없애는 마술을 펼치는 동안 관객 2만여 명의 눈동자에 위축되고 말았다.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주눅이 들었어요. 이렇게 큰 무대는 처음이었거든요. 무대에서 내려와 땅을 치며 후회해야 했어요. 춘천인형극제 강준혁 이사장님의 소개로 마술을 하게 됐어요. 강 선생님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 동시에 ‘휴전선을 사라지게 하자’라는 말이 나왔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마술로 이뤄내는 놀라운 퍼포먼스라고 생각했거든요. 세계 최초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마술이기도 하고요. 매일 찾아갔어요. 돈도 남기지 않고 모두 쏟아부었지요. 드디어 2005년 8월 20일 2만여 명의 관객들이 모인 가운데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라이브로 휴전선을 사라지게 했지요. 마술이 끝난 뒤 사람들은 휴전선이 없어진 땅을 밟았지요.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그의 마술처럼 하루빨리 휴전선이 사라지고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찾아오기를 꿈꾸며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실수는 있다.
“항상 실수해요. 10번 공연하면 2~3번 정도만 퍼펙트지요. 칼을 꽂은 바구니를 돌리다 칼자루가 머리에 맞아 머리에 피가 나기도 했어요. 저는 아파 죽겠는데 관객들은 마술인지 알죠.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아마추어는 실수하면 티가 나는데 프로는 실수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공연차 부산에 내려갔다가 마술도구들을 모두 도둑맞는 일도 있었다.
“봉고차에 검은색 가방이 있으니까 중요한 물건인 줄 알았나 봐요. 공연에 가야 하는데 마술도구가 들어있는 가방이 없어진 거예요.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니까 한 경찰이 마술사가 마술로 도둑을 잡아야지 그러더라고요. 서울에 올라가 다시 짐을 챙겨 와야 했어요. 공연도 펑크가 났고요.”
그 가방을 열어본 도둑의 기분을 생각해보니 마냥 웃음만 나온다.
“마술을 배우면서 친구들에게 보여 준 적이 있는데 배고프면 빵을 만들어 달라, 여자친구를 날씬하게 해 달라,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어요. 제가 어떻게 해줘요. 마술은 마법하고 다른 거잖아요.”
정성모 마술사는 ‘한국마술의 역사’라는 논문을 발표해 국내 최초로 예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원로 마술사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자료를 모아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마술의 역사를 정리했다.
그가 마술사로서 필요하지 않은 학위를 굳이 딴 이유는 무엇일까.
“비제도권에 있는 마술을 제도권으로 옮기는데 기여하기 위해섭니다. 마술로 석사학위를 받은 선배가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거든요. 점차 지방 대학에도 마술학과가 생기기 시작했고 인식도 좋아지고 있어요. 은결이나 현우의 공이 크죠.”
그는 또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일그러진 사람들의 얼굴을 밝게 만들고 싶어 한다.
“과거에 저는 정체성이 없었어요. 마술이 지금의 나와 정체성을 만들어줬지요. 게다가 보다 나은 비전을 제시해 줬어요. 제가 만약 공무원시험을 봤으면 이렇게 행복해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남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며 살고 있잖아요. 돈 받는 공연보다 무료로 하는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버지가 사북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셨는데, 막장에서 그분들을 모시고 공연을 했지요. 검은 얼굴에서 웃음이 번질 때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는지 몰라요. 산골 분교에 마술 캠프도 열고 싶어요. 또 시골에 있는 경로당에 들러 무료공연도 하고 싶고요. 문화적 혜택이 적은 지방을 찾아 마술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박해요. 마술은 재밌고 행복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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