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둠이 주위를 감싸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이른 새벽, 우렁찬 북소리가 새벽을 일으킨다. 영원처럼 잠들고 있는 세상을 깨우고, 뜨거운 감성을 나누면서 벌거숭이 세상을 강렬한 햇살로 가득 채운다. 북 속으로 스며든 강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땅 위로 터져 나오고, 검게 포장된 길을 따라 불꽃들이 춤을 출 때면 사람들은 흔들리고 요동치면서 잠재된 욕망을 깨운다.
최소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도시락 뚜껑과 책상을 두드리며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12살 때 북채를 잡았고, 5년 동안 입산해 “우주 만물의 에너지를 각각의 특이한 소리로 되살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후 그는 그룹 백두산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면서, 인기 드러머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자신의 색깔이 묻어나는 음악세계를 추구하고 싶어 다시 입산했다. 산에서 그는 창작악기를 만들고 자연이 내는 온갖 소리 연구에 몰두했다.
마침내 최소리는 97년 한국적 정체성이 강한 첫 음반 ‘두들림’을 발표했고, 다시 10년 만에 ‘아리랑 파티’를 준비했다.
최소리는 고향인 남도의 장단과 록 드럼의 비트,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음악과 타악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으며, 실험적인 콘서트를 수 백회에 걸쳐 진행했다. 그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성에서도, 흥행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초대전 형식으로 개인전 ‘소리를 본다’를 열기도 했다. 따로 마련된 이동식 음향기로 최소리의 음악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하도록 배려한 이 전시에서 나도 최소리만의 독특한 사운드 아트에 흠뻑 빠져들었다. 마치 ‘소리’가 ‘이미지’로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그의 음악이 주는 강렬한 힘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최소리는 “그림을 그리면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서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전시장에 들린 관람객들은 5분을 못 넘긴다”면서 “이들을 붙잡아주기 위해 음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외국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에 대해 관심 있는 게 무엇이냐고요. 음악은 타악기, 춤은 비보이와 한국무용, 그리고 동양의 무술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믹스한 공연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아리랑 파티에서 최소리는 예술총감독을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본, 기획, 음악, 출연 등 모든 것이 그의 머리와 손끝에서 준비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연습실에서 만난 최소리도 공연 준비 때문에 무척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계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우리 음식 ‘비빔밥’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비빔밥은 밥과 각각의 고명이 한 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맛입니다. 볶음밥이 아니지요. 아리랑 파티는 우리의 춤과 음악, 무예를 하나로 비벼내고 녹여내지만, 각각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공연입니다. 20~30세가량인 단원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 수준급 기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믿고 모여줘 가능한 공연입니다. 이제 난타를 넘어서는 공연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계무대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공연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신바람이 없습니다. ‘아리랑 파티’로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남녀노소, 지역, 학벌, 종교 등에 관계없이 거리에 몰아쳤던 신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음악가 최소리는 카리스마 덩어리이다. 그의 음악은 왠지 모든 게 믿음이 간다. 그러나 여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힘든 일이 있을만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런 단계를 넘어선 위치에 올라가 있다. 그도 “외국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생활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10년 전에 저는 마니아들을 위한 예술을 고집했습니다. 대중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오직 예술에 매달렸죠. 그렇지만 지금은 대중과 호흡할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한국은 인구가 작아서 마니아들만을 위한 작업이 힘듭니다. 훌륭한 예술가가 아니면 고생하기 딱 좋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도, 외국에 가서는 마니아 위주의 아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최소리는 국가적인 행사나 큰 공연에도 주로 초대된다. 아무리 유명한 국내 대중가수들이 출연해도 외국인들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한국적이면서도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는 예술가 최소리를 부르게 된다.
최소리가 공연 중에 긴 머리를 휘날리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짧은 머리 최소리는 왠지 어색하다. 최소리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머리를 자르면 어색하다”면서 “오랫동안 머리를 길러온 데다 머리카락으로 리듬을 많이 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끔 영혼에 슬픔이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최소리의 공연을 멍하게 바라본다. 아름답다가도 허무와 절멸을 선사하는 세상의 일과 부딪쳐 가끔 끝도 없는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다. 머나먼 오지로 여행을 떠나 잡초가 우거진 길섶에 쓰러져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강렬한 예술밖에 없다. 최소리의 예술이 바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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