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몽고반점’, ‘검은 사슴’, ‘내 이름은 태양꽃’ 등으로 지친 일상을 따뜻하게 위로했던 소설가 한강. 한동안 그에게는 ‘문학신동’이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다. 1994년 등단할 때부터 신세대 소설가답지 않은 영민함과 치밀함, 풍부한 상징과 빈틈없는 어휘력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문단과 독자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등단 시기로만 보자면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자기주장이 뚜렷한 중견작가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이거다’라고 추천할만한 글을 쓰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노래를 부르셨네요?”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와 함께 직접 노랫말을 쓰고 작곡한 노래 10곡을 모아 음반을 냈다. 자신도 음반을 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어버린다. 아무렴 어떠냐. 훌륭한 노래 실력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매한가지인 것을.
악보를 제대로 옮기는 법을 몰랐던 그에게 작곡은 무척 힘들었다. 때문에 그는 가슴속에 맴돌았던 음을 테이프에 옮겼고, 작곡가 한정림 씨의 손을 통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됐다.
“녹음할 때 목소리가 너무 떨려 다시 부르고 싶다 했더니 작곡가 한정림 씨가 ‘그냥’이 더 좋겠다고 하더군요. 가수들이 부르는 것처럼 기교가 들어가면 매력이 없다고요. 부족한 노래였지만, 한정림 씨가 많이 격려해줘서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 한강의 노래는 여느 가수들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그의 바람이 아름다운 선율에 절절하게 숨 쉬는 까닭이다. 그의 노래에는 작은 씨앗을 심는 농부의 마음처럼 진실하고 성실한 영혼이 담겨 있다.
“‘햇빛이면 돼’라는 노래가 있어요. 어두운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 햇빛을 쫓아 몸을 구부리는 ‘향일성’처럼 밝고 따뜻한 마음을 서로 나누며 살자는 의미예요.”
문득 세상사는 모습이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쳐들고 황량한 겨울경치를 연출하는 창밖을 얼빠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시대를 돌아보면 기억이 나는 노래가 있다”는 얘기처럼 그의 노래와 글도 누군가의 추억 속에 얽혀 살아 있으리라.
어정쩡한 감동을 주는 노래가 으레 있다. 바로 소설가 한강의 노래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하고 정다운 여운이 남아 다시 듣게 된다. 노래가 멈추고 난 뒤에도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서 계속되는 것 같다. 그의 노래는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이 아니라 꾸밈없고 수수한 미소를 풍기는 여인을 닮았다.
특히 이런 노래는 혼자 있을 때 더욱 간절하다. 늘 곁에 앉아 말을 붙이는 벗처럼 시리고 우울한 마음을 잔잔하게 위로한다.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모두 비슷했다. ‘듣기 편해요.’, ‘질리지 않아요.’, ‘잠잘 때 듣기 좋아요’, ‘가수 맞아요? 여동생 같은데...’, ‘멜로디가 소박해요’
“음반에 ‘내 눈을 봐요’라는 곡이 있어요. 이 노래는 연극 ‘12월 이야기’에서 오랜만에 만난 남녀가 옛이야기를 나누다 싸우는 장면을 보고 만든 노래예요. 다툼 끝에 여배우가 ‘안아주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잖아요’라고 말하면서 암전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객석에 앉아 있던 한 50대 중년 남자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더라고요.”
녹음을 끝내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는 그의 얘기가 선뜩 가슴에 와닿는다. 겨울에 글을 몰아 쓰기로 유명한 한강은 아이들 앞에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는다. “아이가 섭섭해할 것 같아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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