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손인경 바이올리니스트 - 장애인들에게 인간이 되는 수업을 받았다

이동권 2022. 9. 30. 13:53

손인경 바이올리니스트, 온누리 챔버 단장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별한 재능이나 열정을 타고났다면 문제는 달라지지만, 자기 몸하나 온전하게 운신하기 힘든 장애인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을 위해 독특한 교습법을 만들고 악기 연주를 가르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음악가가 있다. 바로 온누리 챔버 단장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손인경이다.

“손바닥을 편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 끝을 붙이면 개방음 ‘라’입니다. 주먹을 쥐면 ‘솔’이고, 손바닥을 펴면 ‘레’, 높은 ‘미’는 주먹을 쥔 상태에서 새끼손가락만을 올리면 됩니다.”

수화가 아니다. 손인경 단장이 장애인들에게 계명을 손쉽게 가르치기 위해 만든 수신호. 지휘를 할 때도 활 방향의 움직임을 알려주기 위해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물결모양처럼 위로 올렸다 내린다. 손 단장만의 이러한 장애인 교습법은 외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으며, 그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물어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온누리 챔버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인간이 되는 수업을 받았다는 것. 그는 “단원들에게 투자한 시간 동안 레슨을 했다면 아마도 큰돈을 벌었겠지만, 온누리 챔버 때문에 돈이 가르쳐줄 수 없는 소중한 삶의 의미를 얻었다.”고 말했다.

온누리 챔버는 처음 5명으로 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장애인 60여명과 함께 연주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한 손 단장이 자신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되돌아보았다는 것. 그는 유학생활, 학위, 오디션 등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살아온 동안 ‘나눔’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장애인 음악 교육에 나설 것을 결심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먼'은 장애인이면서 세계적인 음악가입니다. 무대에 나올 때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이죠. 그를 생각하면서 재능을 가진 장애인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음악수업을 하게 됐습니다. 음악은 또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치료효과도 있습니다. 자폐 1급 장애인인 재민이는 비올라를 너무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악기를 들고 무대에 오르면 옷매무새부터 고치며 진지하게 변하죠. 온누리 챔버에 들어오면서 달라진 것입니다.”

온누리 챔버에는 9살부터 37살까지의 장애인 35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의 연주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선생님은 20명에 이른다.

“영화 말아톤을 보면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어머니의 심정을 알 수 있듯이 저도 연습실에 몰려오는 어머니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됐습니다.”

손 단장의 근심과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뇌수종 수술로 장애를 얻은 김어령 학생은 첼로니스트가 되어 백석예술대학에 입학했으며, 자폐성향이 있는 이안 군은 클라리넷 연주자로 천안 나사렛대학에서 음악공부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 손 단장은 얼마나 기쁜지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손 단장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가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일반 학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는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존재조차 몰라주는 것도 싫고, 지나치게 쳐다보거나 의도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싫어한다”면서 ”그냥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주고, 또 이들의 삶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