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운이 연방 넘실거린다. 석회 같이 희고 황톳물처럼 붉은빛이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들판과 초원, 꽃과 나비, 구름과 바람의 향기에 뜨거운 햇볕은 부서지고, 우뚝 뻗어 오른 색 무더기들이 무섭게 질주하고 있는 세상을 비웃는다.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활동을 하면서 늘 뭔가 빠진 것 같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죠. 이런 감정을 충족할만한 뭔가가 필요했던 저는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다 근원적으로 뿌리가 약한 서양화에 동양의 정신을 스며들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서의 결합을 통해 우주를 자연화하고 인간과의 합일을 도출하는 방식이죠”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을 화폭에 담아온 오준원 화백.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의 얼굴에도 주름이 깊어졌다. 점잖고 밝은 목소리에서도 지나가는 세월을 잡으려는 듯 바쁘기만 한 마음이 보인다. 나이를 물어도 “평생 한 살로 산다”고 웃어버린다. 그는 “작업에 미쳐 3일 동안 밤을 새운 적도 있지만, 지금은 하루라도 날을 새면 힘이 든다”고 돌려 얘기했다.
다양한 색채와 기법을 활용한 그의 그림은 오랜 노동의 흔적이 묻어나 저절로 탄성부터 흘러나온다.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고, 가벼우면서도 진중해 여러 가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이 내재하고 있는 오묘한 생명력을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해온 결과이다.
오 화백은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에서부터 거대한 대순환의 진리를 미적 언어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그는 장르나 형식,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를 발현하고 있다.
“자연은 그대로 흘러가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대자연의 순환 앞에서는 매우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죠. 눈을 감고 자연의 순환을 느껴보면 저절로 외경심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그림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인간에게 평화와 안식을 선사하는 대자연의 은혜를 화폭에 옮겨보고 싶은 거죠.”
오준원 화백은 ‘자연 정신주의(Natural and Spirit)’를 주창한다. 자연과 작가정신을 결합해 새로운 미적 개념을 만든 것이다. 그는 N.S를 모토로 작품 활동에 모든 힘을 쏟고 있으며, 이니셜 N.S를 이용해 문화상품으로 발전시켰다.
“N.S는 서양과 동양사상을 결합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천지조화의 오묘한 진리 앞에서 숙고하며, 모두가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지향합니다. 한국인들은 성질도 급하고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존하는 삶이 그렇게 어려울까요? 더 부유하고, 더 빨리 성장하려고 욕심을 내는 사람들의 조급증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고,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먼저 출세하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에서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스트레스도 범람하죠. 이런 세상에서 미술은 진행 속도를 늦추더라도 인간미 넘치는 세상, 서로 어울리며 나누는 세상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림을 통해 계몽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할 일이죠. 예술인들은 우리 사회를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의 어두운 것들을 필터링해서 아름다운 미래를 지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준원 화백의 그림에서 심상치 않은 공기가 감돌고 있다. 깊숙한 숲 속에 있는 것만 같다. 마른 단풍잎들이 발길에 차이고, 방금 녹아내린 눈이 나무줄기를 타고 유유히 흘러내린다. 전병 냄새를 풍기는 축축한 이끼들은 끝없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스팀 같은 안개를 만들고, 불쑥 나타난 두 개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 마는 듯 양 옆에 서서 환한 빛이 가득한 곳으로 인도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캔버스를 뚫고 나와 아수라장을 만들 판국이다. 우중충하고 찌푸린 날씨마저도 기가 죽었다.
오준원 화백의 그림은 재료가 많이 들어간다. 평면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두텁고 섬세한 물감들을 서로 달라붙게 하는 흡착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오 화백 그림의 특징은 ‘색’에 있다. 자연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고귀한 정신을 표현하려는 그의 의도가 금방 느껴진다.
“어둠과 밝음이 있는 것처럼 작품에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주의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화가라면 색채 감각 못지않게 실기가 중요합니다. 실기가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영감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사장되고 맙니다. ‘노력’한다는 말보다는 훈련하는 과정을 일상 안으로 흡수해 ‘자연화’시켜야 합니다. 노력이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억지스럽게 보입니까. 노력이 생활에서 패턴화가 되면 그것 자체가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 됩니다. 굳이 ‘노력’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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