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언은 피아니스트이자 뉴에이지 뮤지션이다. 그는 2002부산아시안게임 공식음악 프론티어(Frontier)를 작곡했다. 프론티어는 태평소, 장구 등의 한국 전통악기와 서양의 오케스트라를 절묘하게 결합해서 만든 역동적이고 장중한 음악이다. 그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OST를 비롯해 여러 영화와 앨범에서 작곡가,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음악을 작곡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양방언은 여러 방면의 음악에 참여한다. 그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가지각색의 스타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음악을 체험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많은 사람이나 다방면인 요소를 섞어 작업하면 그 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성했을 때는 솔로 음악을 할 때와는 다른 자극을 제가 받게 된다. 또 그것이 솔로 음악에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중요한 것은 역할이나 직함이 달라도 ‘음악을 한다’는 기본 부분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가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는 삶이다.”
양방언은 1960년 일본 동경에서 출생한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 2세다. 일본 이름은 ‘료 쿠니히코’이며, 아버지의 고향은 제주도다. 양방언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하는 의사 아버지의 권유로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됐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끝내 그를 음악가의 길로 이끌었고,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만들었다. 양방언을 음악가로 이끌었던 그 열정은 어떻게 쌓이게 된 것일까.
양방언은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배웠지만 흥미를 갖지 못하고 습관적으로만 배웠다. 그의 부모도 음악이 감성교육에 좋아서 가르친 것이지 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양방언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 음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전에 들었던 여러 음악까지 하나가 되면서 음악에 강렬하게 끌려들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도, 피아노 연습이나 클래식 음악 자체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진 않았다. 그 대신 혼자 놀 때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테마곡을 피아노로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11살 때 그 당시 록이나 팝을 시작으로 여러 장르의 음악을 폭넓게 듣게 되면서 스스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영국과 미국, 그리고 브라질 음악이나 유럽의 프로그레시브 록도 좋아했고, 그때까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에도 눈을 뜨게 되면서 바로크나 낭만파 음악 등 정말 폭넓게 많은 음악을 들었다.”
양방언은 의사 집안에서 자라서 의대에 가야 했고, 의사가 됐다. 의대에 다닐 때 프로 음악인들과 교류하면서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반드시 의사 면허를 따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그리고 대학병원에서 마취과 의사로 1년 동안 일하다 갑자기 음악가의 길을 선택했다. 왜일까? 돈과 명예 다 버리고 음악을 좇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의사로서의 1년 동안 경험이 양쪽의 직업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음악을 선택하겠다는 결정이 가능해졌다. 해 보지 않고는 모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느 쪽이 훌륭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저에게는 의사보다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고, 그것에 관해서는 지금도 물론 후회하지 않는다.”
양방언이 가장 아끼는 음반은 런던에서의 첫 오케스트라 레코딩이었던 ‘Into the Light’다. 하지만 그는 “다른 솔로 음악 모두 자식과 같은 존재”라면서 “가지런하지 않은 귀여운 어린이들”이라고 말한다. 음반은 그 당시 자신을 비춘 거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음반에 똑같은 애정이 있다는 것이다.
“제 음악은 가사가 없으므로 유행 가요와 같은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대신 ‘오래 & 천천히’ 음악이 자라 주었으면 한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발매했던 앨범에 수록된 곡이 어떤 CF에 사용되는 순간, 그 음악을 만든 나로서도 ‘이런 모습이 되어서 되돌아 왔다’라고 신선하게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의 음악은 그처럼 오랜 음악으로 있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양방언이 음악으로 얘기하는 것은 ‘상승지향’이다. 감상적이거나 우울한 부분, 다양한 감정표현도 음악에서 중요하지만 그는 언제나 위를 보고 있다.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 오늘을 사는 힘과 희망을 주고 싶어서다.
“제 음악을 듣고 ‘희망이 솟고, 힘이 나온다’라고 말해주면 매우 기쁘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그 말이 제 자신에게도 똑같이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
양방언이 아시아의 문화허브를 꿈꾸는 광주에 들려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한국이 바로 자신의 뿌리이기 때문에 어느 참가자보다 감회가 남다를 듯싶다.
“광주는 이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고, 한국에서 매우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다. 이번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고, 멤버들도 모두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앨범 ‘Floating Circle’을 떠올리니 저에게 많은 상상력을 주면서 무한궤도를 따라 천천히 회전하는 것, 그 안에 들어가면 무엇인가 새로운 반응이 일어나는 것, 무엇인가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간다. ‘Floating Circle’은 불가사의해서 매력적인 공간인데, 저 자신에게도 불가사의해서 매력적인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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