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아는 착실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고, 노랫말도 모르는 팝송까지 흥얼거릴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가족들 앞에서 티를 내지 않았다. 엄한 가풍이 유리아를 찬찬하고 부지런하게만 자라 달라고 채근했다.
유리아는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본색을 드러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길 원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노래와 연기를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리아의 당당한 주장에 기가 찬 아버지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정도의 충격을 겪었다. 그렇게도 상냥하고 부드러웠던 딸이 연예인이 되겠다고 고집부리는 상황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대가 심하셨어요. 여태까지 모범생으로 자라왔던 것처럼 착실하게 공부하기만을 바라셨죠. 게다가 아버지는 제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아버지는 유리아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거래를 요청했다. 수시 전형으로 연극영화과에 지망해서 합격하면 학비를 대주지만, 수시 전형에서 떨어지면 정시 전형에서는 공부하는 학과를 선택하라는 거래였다. 유리아는 물러설 수 없었다. 공부가 싫어서 연극영화과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어떻게든 연극영화과에 합격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유리아가 지원한 학교의 연극영화과 경쟁률이 153.4대1이나 됐다. 아버지는 경쟁률이 높게 나오자 ‘인생은 로또가 아니다’는 말을 유리아에게 남기고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한 번도 연기나 음악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는 딸이었기에 그대로 낙방할 것이라 내심 기대도 했다. 그러나 유리아는 보란 듯이 붙어 합격증을 아버지께 내밀었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유리아에게 연예인으로서의 재능과 자질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밀어주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사전 같은 분이세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모르면 사전을 찾아보듯이 어떤 일이든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때는 아버지에게 물어요. 아버지는 소신이 뚜렷하고 정의로운 분이에요. 약자에게는 약하고, 강자에게는 강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거든요. 그런 아버지가 저를 팍팍 밀어주기 시작했어요.”
유리아는 대학에 들어간 뒤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도 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리아는 연기와 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 20살 때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뮤지컬 ‘렌트’였다.
“‘렌트’는 꿈의 뮤지컬이었어요. 합격하리라는 생각보다는 오디션이 무엇인지 경험해보자는 차원에서 시도한 도전이었죠. 지금이야 박칼린 선생님을 알지만 그때는 서양사람 같은 분이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어서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주눅 들지 않고 열심히 오디션을 봤어요.”
유리아는 오디션에서 덜컥 합격해버렸다. 자신조차도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나이 많은 선배들 틈에서 20살 애송이가 대형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저는 연기와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확신이 없었어요. 잘난 체도 할 줄 모르는 성격이거든요. 자신감, 자기애가 많지 않아서 잘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았어요. 하지만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이 길이 저의 길이라는 확신을 하게 됐어요. 렌트에 참여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아요. 특히 박칼린 선생님과 작품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제가 맡은 역이 무대에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앙상블이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공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계속해서 심어주셨거든요.”
뮤지컬에서 ‘앙상블’은 주연과 조연을 빼고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배우들을 말한다.
유리아는 첫 공연을 마친 뒤 혼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관객들이 나를 바라보고, 내가 쳐다보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리는 관객들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도 유리아의 공연을 보면서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리게만 보였던 유리아가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노래하자 신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리아는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공연을 하면 할수록 불만이 생겼다. 1차 오디션부터 빡센 경쟁을 치른 뒤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배우들과 달리 연예인들이 마지막 오디션만 보고 공연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리아는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연예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다. 그래도 유리아는 연예인들에게 할 말은 하고 싶다.
“티켓파워 때문에 연예인들이 주연이 되는 것은 이해가 되요. 하지만 연예인들이 작품에 참여할 때 스케줄이 바쁘더라도 연습 레벨을 맞췄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웃음)”
유리아의 가수 데뷔는 정말로 우연이었다.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찍은 영상에 반한 기획사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유리아를 캐스팅했다. 그런 인연으로 유리아는 유명 래퍼의 피처링도 하게 됐고, 드라마 OST도 부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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