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동권 기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여름경으로 기억된다.
<컬처뉴스> 편집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조각가 구본주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는데, 삼성화재에서 매우 자의적인 기준으로 보상금을 책정해 예술인들이 일일 시위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 본 그는 매우 다정다감하면서도 수수해 보였지만, 너무나 진지하게 사건을 다루는 모습 속에서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지만 ‘한 고집’할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이후 우리는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만났던 것 같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 현장에서도 만났고, 친일 예술인들을 특집으로 다룬 인터뷰 때문에도 만났다. 만날 때마다 소주를 마셨던 것 같다. 술기운을 빌려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수시로 연락은 했던 것 같다. 물론 바빠서 쉽게 통화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동권 기자가 책을 발간한다고 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 통화하기도 힘들 만큼 바쁜 사람이 언제 책을 다 썼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투입했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흠뻑 묻어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 직접 겪어보고 인터뷰해서 만든 책이었다. 이동권 기자는 이 책을 위해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는데, 과연 그 정성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인터뷰가 결코 쉽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녹아 있어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우리이웃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대개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이동권 기자가 주목한 이들은 너무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다. 비록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환경미화원이 없는 사회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소·돼지를 잡는 도부 없이 어떻게 우리의 식탁이 풍성해질 수 있겠는가. 고층빌딩에서 청소를 하는 로프공이 없다면 얼마나 불결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가. 포장마차 주인이 없다면 삶의 쓸쓸함을 어디서 달랜단 말인가. 살아가면서 무심결에 지나친 이들이, 이 책에서는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삶과 직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그들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한편으로 가슴이 아련히 아파온다. 많은 이들이 자식들이나 부모에게 떳떳하게 자신의 직업을 말하지 못한다. 자식이나 부모는 상처를 받을까 봐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그것을 자식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부모가 자식들의 입에 밥을 넣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비굴하게 살아가는가. 그런데 그것을 자식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녕 그렇다면, 그런 사회의 미래를 누가 보장할 것인가. 그들이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직업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편견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과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열심히 살지 않아 가난한 사람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마찬가지로 열심히 살지 않고도 부정을 저질러 부유하게 사는 이들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는데도 가난한 이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런 부모를 자식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도 진부한 이야기지만, 가난은 결코 죄가 아니다. 인간마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힘들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그것을 날카롭게 그려낸 기자의 솜씨와 노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광풍이 휘몰아치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점점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어가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누구보다 인상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이 그려낸 우리 이웃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풀기 어려운 숙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언제 그와 만나 소주 한잔하면서 이 숙제에 대해 길게 길게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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