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기주의에 멍든 국립 서울병원 사람들
우리의 정체는 인간,
몸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존재,
모두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온 생명체다.
우리는 그 뚜렷한 암시를 따라
서로를 껴안으며 살 수 없을까.
정신병원은 영화나 소설에서 불길한 징조가 가득한 곳으로 묘사되곤 했다. 한 여인이 성에가 얼어붙은 창살을 잡고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온몸이 묶인 한 사내가 창밖에 떠있는 보름달을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가 전기충격 치료를 받으면서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고, 환자들끼리 성관계를 맺거나 괴상한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서 등골을 오싹하게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창작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대중매체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정신병원에 대한 위험한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을 뿐이다. 또 정신병원은 평범한 사람들을 가둬놓고 온갖 방법으로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감옥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재산을 노린 가족 친지들이 상속인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고, 정상인을 강제로 감금시킨 전문의들이 고소당하는 사례도 종종 뉴스를 통해 보도됐으며, 멀쩡한 사람들이 정신병자로 몰리지 않도록 정신보건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이처럼 정신병원은 황량하고 원망에 찬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표현돼왔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몸과 마음을 하염없이 집중해 탈출을 감행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려져 왔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해야 하지만 자식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입원시키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을 정도다.
사람들은 정신병원에 가보지 않았으면서도 미디어에서 본 모습을 상상하면서 무작정 혐오스럽고 무서운 곳으로 생각한다. 짓궂은 사람들이 친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정신병원에 가봐야겠다.’는 농담을 건네는 것도 다 그런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쌓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식 부재 때문이다. 정신병을 다른 병과 같이 생각하지 않고 저질스럽고 몹쓸 귀신이 씌었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찾아간 국립 서울병원도 이런 선입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병원은 수도권에 있는 정신병원 중 국가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곳으로, 워낙 시설이 낙후돼 있는 데다 적당한 이전 장소마저 없어 재건축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되고 말았다. 주민들은 정신병원은 혐오시설이기 때문에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다른 데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양춘석 보건복지가족부 사무관은 주민 65%가 재건축을 찬성하기 때문에 곧 있으면 1재건축 문제가 일단락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주민 20% 정도가 이전을 주장합니다. 대부분 오피니언 리더들입니다. 일반 주민들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못사는 사람들을 모아 거주하게 했는데 그 지역이 슬럼화 됐습니다. 그런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의료 선진국에서는 마을 안에 요양시설이나 의료시설을 두고 둡니다.”
정신병은 정신기능의 이상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거의 없으며, 향정신약물이 발달하면서 유전병이라는 그릇된 편견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여러 생활요법의 병용으로 치료율이 높아지면서 사회에 복귀하는 환자들도 늘고 있다.
현재는 서울병원 일대가 20여년간의 재개발 갈등을 해소하고 대규모 의료 테마 복합단지인 ‘종합행정 의료타운’으로 개발된다. 국립 서울병원 부지는 1단계로 정신건강연구시설, 임상센터, 부속병원 등을 건설하고 2단계에서는 의료행정기관, 의료바이오벤처시설, 업무시설 등이 지어진다. 공원 등 생활기반시설도 확충된다.
정신병원이 혐오스럽다고요?
집값을 올리기 위한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이전 요구에 시달리는 국립서울병원이 정말 혐오시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직접 둘러보지 않고서는 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주민들의 얘기처럼 정신병원이 ‘늑대굴’ 같은 곳이면 어쩌겠는가. 주민들이 늑대가 있는 곳이라고 하니 늑대들이 도망치기 전에 그 모습을 확인하는 게 옳지 않은가 싶어 무리하게 부탁을 했다.
각 병동은 담당 의사와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야 접근이 가능했다. 특히 양춘석 사무관의 도움이 없었다면 방문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고, 이곳에서 재건축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정신병원 폐쇄병동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내가 환자가 돼 방문할 수도 있지 않은가.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인간은 모두 정신병적인 징후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나도 어느 순간 정신병자가 돼 들어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며, 현대사회가 발달 해갈수록 정신과 상담도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기분 나쁜 일로 여긴다. 정상인 같은 사람이 정신병원에 입원해도 큰일이 난 것처럼 말한다. 정신병에 대한 편견 때문이지만 이러한 반응은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된 사람들의 실태가 TV를 통해 보도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혐오시설에다 인권 사각지대라는 누명까지 쓴 것이다.
나는 정신병원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명동으로 나갔다. 설문은 20대, 30대, 40대 각 10명씩 3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정신병원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지’와 ‘자기 동네에 정신병원이 생긴다면 찬성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정신병원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는 11명이 혐오스럽다고 답했고, 15명은 싫지는 않지만 호감은 가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4명은 혐오스럽지 않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정신병원을 혐오시설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기네 동네에 정신병원이 생기다면 찬성하겠느냐는 질문에는 26명이 반대하고 4명이 찬성해 아직도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지역이기주의의 뿌리가 깊은 것으로 드러났다. 40대 이상의 시민에게 만약 동네에 있는 정신병원을 재건축한다면 이전하는 게 좋겠느냐고 묻자 10명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병원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정신병원이 대중매체를 통해 잘못인식돼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상할 것도 없는 정신병원
양 사무관을 따라 처음 들른 곳은 소아자폐증 및 발달장애아동들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병동이었다. 병원이라면 소독 냄새 때문에 코끝을 찡그리게 되지만 이곳은 유치원이나 일반 어린이집과 비슷해 방끗 미소가 피어올랐다. 병동 입구에 풍선을 둥그렇게 매달아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고, 치료실 벽은 양지바른 뜰에 핀 꽃과 아기자기한 동물 그림 등으로 꾸며놓았다. 굳이 병원이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전혀 눈치재지 못할 정도다.
양춘석 사무관은 “국립서울병원에서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운 소아청소년들을 위해 병원학교인 ‘참다울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진료소 건물에서 빠져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병원 본관으로 향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얼굴로 식사를 준비하는 취사장을 지나자 ‘낮병동’이 나타났다. 낮병동은 출퇴근하면서 치료받는 형태로 운영되며, 환자들은 일상생활에 적응하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재활훈련을 받는다. 쉽게 얘기하자면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 옆으로는 응급조치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응급진료실이 있었다. 의학이 발달하고 약이 좋아지면서 특별하게 발생될만한 문제는 없지만 퇴원한 뒤 약을 잘 먹지 않거나 병원 치료프로그램을 잘 따르지 않으면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켜 여기로 들어온다. 주로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술이나 약물을 남용하는 환자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병을 고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보통 강제적으로 들어오며, 의사들은 진료 후 환자를 입원시킬지 귀가시킬지 결정한다.
개방병동은 환자들이 낮 동안 병동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다. 환자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면서 재활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이곳은 입원하기 전과 같은 정상적인 환경을 제공해 사회복귀와 직업재활이 이뤄지도록 돕는다. 이곳의 구조는 출입구를 지나면 긴 복도를 따라서 양옆으로 탁구대와 책상, TV, 책 등이 놓인 휴게실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실이 있다. 일반 병원과 매우 유사하다.
국립 서울병원에서는‘ 중독’ 환자를 위한 병동도 개설했다. 술, 도박, 게임 등 중독 증상을 치료하는 곳이다. 급성환자들은 병동 출입이 금지된 곳에서 치료를 받다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태경 전문의는 “서울병원에서는 중독 환자들이 원만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치료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자조 모임을 통해 환자의 회복을 돕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폐쇄병동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있는 곳이다. 병동 출입구를 막아놓기 때문에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 그 대신 병동 안에서 운동을 시키고 재활치료를 한다.
이곳 환자들은 겉으로 봐도 정신질환이 있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예를 들면, 손가락으로 계속 머리를 꼬는 사람도 있고, 군대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계속 포복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서로를 해코지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환자는 거의 없다. 밝은 얼굴로 웃고, 심각한 얼굴로 먼 곳을 응시하며 조용하게 하루를 넘긴다. 건물 구조는 개방병동과 똑같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정신병원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새롭고 낯선 것들을 맞이하는 걸 어려워하고, 적절한 직업 활동이나 현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또 사람들의 편견처럼 어둡고 침울한 곳도, 억제할 수 없는 발작과 폭력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곳도 아니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조금이나마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도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정신병원은 환상이었고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한 허구에 불과했다.
공장처럼 보이는 병원
옛날에는 정신병자에 의한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길에서 연약한 여성들을 폭행하거나 자동차에 불을 지르는 등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정신병자를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해 감금했으며, 담장도 높게 만들어 안에서 밖이,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병원에서도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말을 듣지 않는 환자를 폭행하고 손발을 묶었다.
그러나 정신의학이 발달하고 인권존중의식이 높아지면서 정신병원 안에서의 환자 처우나 의료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아니면 구금하는 병실 대신 개방형 병실을 이용하도록 했고, 하루 종일 입원하지 않고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처방을 시행하고 있으며 레크리에이션요법, 생활요법, 직업요법, 연극회화요법을 적극 활용해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태경 전문의의 안내로 시설 곳곳을 돌아보면서 정신병원은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병원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치료가 이뤄지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지 부족한 게 있다면 시설이 낙후됐다는 것이다.
서울국립병원은 병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낡아 마치 오래된 공장처럼 보였다. 이곳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중앙의료기관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외풍을 막기 위해 창틀만 새로 달아놓은 병동도 있었고 문틈이 맞지 않아 차가운 공기가 매섭게 들어오는 곳도 있었다. 복도 천장에는 천장 칸막이 공사가 되지 않아 온갖 파이프와 전선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으며, 벽에는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흉물스러운 인상을 풍겼다. 건물은 단단해 보였지만 현대의학에 맞게 설비가 갖춰지지 않아 치료도, 입원생활도 모두 어려워 보였다.
양춘석 사무관은 “보온이 되지 않아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면서 “보수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도 에너지 절약형 건물이 아니어서 효율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사무관은 ‘국공립 의료시설의 확대가 의료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진단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계층 중에는 국가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립서울병원에는 의료급여 대상 환자들이 50%에 육박합니다. 집안에 만성 정신질환자가 있으면 가계가 풍비박산이 나고 맙니다. 정부는 그런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 안정망을 잘 갖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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