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이동권의 책은 직업 열전을 방불케 한다.
도부(屠夫), 때밀이, 밴드 마스터, 무명가수, 숙박업 종사자(일명 조바), 감단직 노동자, 안마사, 노점상, 로프공, 무당, 우편배달부, 포장마차, 바텐더, 교도관, 누드모델, 경기보조원(일명 캐디), VIP운전기사, 제빵기사, 배전선로 기술자, 산불감시원, 사회복지사, 미화원, 인쇄노동자, 마방 사람들, 정신병원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많은 직업들이 있었나 물어보지만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 그러저러한 이웃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시원시원한 사진들과 함께 이어지는 이웃들의 열전은 누드모델, 밴드마스터, 숙박업종사자처럼 뭔가 들여다보는 쾌감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교도관이나 정신병원 사람들처럼 ‘별취미군...’ 하는 헛웃음을 낳게 하기도 한다. 책을 집어 든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차분히 읽어나가기보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몇몇 꼭지들을 들여다보지 않을까. 그렇게 책장에 고이 모셔지기도 하고 화장실이나 지하철처럼 길지 않게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할 것 같다.
평범한 독자가 아닌 작가를 잘 아는 처지에서 들여다보면 이렇다.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있으니 이른바 직장인들의 ‘밤문화’에도 몇 번 따라갔을 것이다. 때밀이의 세계에는 취재를 핑계로 몸을 한 번 맡겨보았음직하고, 포장마차나 바텐더는 오랜 술과의 인연에서 익숙한 동행들이었을 테다. 그림을 그린 적이 있으나 그 시절엔 감히 말을 붙이지 못했을 누드모델의 세계는 인제 서야 찾아볼 용기를 냈을 것이고, 화첩을 함께 찍은 인쇄노동자들은 동업자나 다름없었을 게고, 감옥에 간 지인들과는 원수 사이였을 교도관에 대해서는 홀로 연민의 정을 품었을 것이다.
작가는 취재를 명분삼아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찾아다녔음에 분명하다. 눈에 띄지 않거나 드러내 놓고 자랑하기는 뭣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 누군가는 결국 맞닥뜨리게 되는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다들 제 잘난 맛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오늘도 퇴근 후 집에 들어가 익숙하게 형광등을 켜고 수도꼭지를 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얽혀 들어야 한다. 작가가 들여다본 ‘우리 이웃’은 그들 중 여러 명일뿐이다.
이웃을 만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작가는 인터뷰를 위해 몇 다리를 건너 섭외를 했고, 그것이 되지 않을 땐 막무가내로 ‘체험’에 뛰어들기도 했다. 3년의 시간은 짧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말처럼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날부터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까지 현장에 나”간 기록이기도 하다.
문득 기억나는 것은 그의 글에는 ‘적’이 없다는 점이다. 못살고 고된 이웃들의 이야기이지만 흔한 말로 ‘계급적 적대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작은 바람이 있다면 우리 이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든지, “따뜻하게 안아주자, 우리는 모두가 외로우니까”같은 다짐뿐이다. 그가 <민중의소리>, <말> 같은 언뜻 과격해 보이는 매체에서 일하면서도 이처럼 평화로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면에 깊이 자리한 부끄러움 같은 것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한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했다지만 부끄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부끄럼 없기를 기원했겠는가. 모두가 부자로 살기를 열렬하게 바라는 이 진흙탕 같은 시대에 부끄러워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선을 만나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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