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밥줄이야기

[책을 읽고] 투명인간, 우리이웃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 허은미 작가

이동권 2021. 4. 8. 21:30

허은미 작가 ⓒ허은미 페이스북

 

짧은 글로 사물의 중심을 표현하는 데 익숙한 나에게, 어느 날 두툼한 원고가 배달되었다.


처음엔 그 방대한 양에 질려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나는 필자가 들려주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어디서나 눈에 띄고, 어디서나 목소리가 들리는 잘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투명인간’처럼 우리의 시야와 의식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어온 이웃들이다. 그렇게 아무도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이동권 기자는 3년여의 세월에 걸쳐 기록해왔다.


원고를 읽다 보니 몇 달 전, 환경에 대한 원고를 쓰느라 쓰레기차에 동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 나는, 밤새도록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쓰레기를 모으고 소각장으로 가져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내가 따뜻한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잠든 시간에 누군가는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내가 낮 동안 버리고 더럽힌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누군가는 구슬땀을 흘리며 밤을 지새운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편안함과 안락은 결국 그들에게 빚진 것임을, 나는 그날 온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삶이란 이렇듯 촘촘하게 엮인 ‘관계라는 그물망’ 속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작가는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제 감았던 눈을 뜨고, 막았던 귀를 열고, 닫았던 입을 열라고. 그리고 여기 우리 이웃의 삶을 보고 듣고 말하라고. ‘행복한 청소부’, ‘행복한 때밀이’, ‘행복한 로프공’, ‘행복한 포장마차 주인’, ‘행복한 우편배달부’가 많아질 때, 우리 사회가 행복해진다고. 나와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아직도 그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