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김금희 화가 - 가슴속에성 우러나온 독백

이동권 2022. 9. 26. 21:21



그야말로 정열적인 그림이었다. 세상일일랑은 모두 잊어버리고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처럼 홀로 뜨거운 열기를 분출하고 있었다. 마치 생을 바쳐 사랑해야 할 사람을 오래도록 품에 껴안은 채 행복을 만끽하는 모습 같은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이국적인 신비로움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심사를 흔들리게 했다. 한동안 강렬하고 달콤한 색채의 아우라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했다. 

김금희 작가의 작품은 대단히 멋졌고, 근사했다. 야무진 젊은이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힘이 넘쳤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기골이 장대하거나 아주 괄괄한 성격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이렇게 힘이 넘쳐나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이토록 단아하고 섬세하며 기품이 넘치는 여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 그림이 기를 살려준다고 그래요. 어떠세요. 힘이 넘치시나요? 저는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림은 그냥 봐서 좋으면 돼요.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야 작가들이 하는 것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편안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봐주세요."

김 작가는 초창기에 예쁜 그림을 그렸다. 겉모습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만 딱 좋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화력이 늘기 시작하면서 화풍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름답게 꽃이 핀 복사나무 같던 그림이 강렬한 색조와 대담한 구성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어둡고 칙칙한 게 싫었어요.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강렬한 컬러를 쓴 것은 아니에요. 어느새 저도 모르게 그런 색을 쓰게 됐어요. 그래서 제 그림은 가슴에서 우러나는 저의 독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그림, 사람들에게 여운이 남는 그림을 그릴 거예요."

김금희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리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미술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열렬히 원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자기 고집만 부릴 수 없었다. 결국 아이 둘을 낳고 나서 그때 그 시절의 꿈을 현실화했다.

"다른 작가들보다 작업을 늦게 시작했어요. 나이가 많아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지요. 그런데 조금씩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길이 너무도 어렵고 멀다는 것을 느꼈어요.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올 정도로 근심이 생겼지요.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가 예술가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요. 남편도 좋아하고요."

뒤늦게 시작한 작가의 길.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시시각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작가로서의 길 모두 만만치 않은 자리다.

"남편이 배려를 잘해줘서 힘들지 않아요. 가사와 그림 그리는 일을 병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요. 대신 그림에 대한 열정과 욕심 때문에 힘들어요. 그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가슴이 울렁거려요."

김금희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아끼는 작품이 있으면 팔지 않았다. 다시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 같아 차마 팔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품 안에 남겨두는 일은 없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까닭이다.

"전시장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어요. 안면이 없는 분들이 제 작품을 사가더라고요. 얼마나 가슴이 뛰고 보람이 있었는지 몰라요. 감히 쳐다보지 못했던 선배님들이 어떤 물감을 썼느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어떠냐고 묻기도 했지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김 작가는 처음 외국도시와 정물을 그렸다. 최근에는 전라남도 함평에서 관찰한 연꽃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리는 연꽃과는 차별화된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싶었다. 연꽃을 표현했지만 비구상에 가깝고, 컬러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림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마음에 변함은 없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그림, 남들이 들여다보지 못한 것을 표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