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언제나 우리의 가까운 ‘친구’이자 ‘설교자’였다. 영화가 우리에게 깊은 평온과 즐거움을 선사할 때 우리는 기뻐했고, 영화가 우리의 사고와 생활방식까지 바꿔놓을 때 우리는 영화를 존경했다.
진실하고 건강한 영화처럼 신성하고 값어치 있는 것은 없다. 좋은 영화는 영화라는 예술이 지향해야 할 어떤 역할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영화야말로 기형적인 역사 속에서 드러난 갖가지 고통과 슬픔, 상처와 시련을 치유하는 ‘명약’이자 비뚤어진 진실을 바로 잡는 ‘바로미터’다.
영화, ‘천안함’도 그러한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는 강압적인 힘에 의해 어물어물 넘어가버렸던 진실을, 아니 어떤 힘에 억눌려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진실에 의문을 던지기 위해 아글타글 애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히자’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은 남다른 생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영화 ‘천안함’을 연출한 김도균 감독은 간곡한 표정으로 말한다.
“천안함 사건이 잊히면 안 된다.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진실을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나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진실에 대한 갈구보다는 관객들에게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접근법을 제시해보려고 했다. 그러한 액션을 시작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의를 제기하다 보면 바다에 잠긴 천안함은 수면으로 떠오를 것이다.”
처음에는 궁금했다. 진실에 대한 갈증도, 사사로운 열정도 아니었다. 배가 두 동강이 난 이유가 그저 의문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고 자체가 무척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느새 궁금증은 짜증이 되기 시작했다. 여러 군데서 터져 나온 갖가지 ‘말(言)’들 때문이었다. 침몰의 원인은 분명히 하나일 테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을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진실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이 거짓이 되고, 얼토당토아니한 괴담이 만들어지고, 침몰의 원인이 다른 데로 돌려지는 상황과 직면하자 짜증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옛 속담에도 ‘도둑을 뒤로 잡지 앞으로 잡나’는 말이 있다. 확실한 증거로 도둑을 잡아야지 추측이나 의심으로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물건을 훔친 도둑도 분명한 증거 없이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46명의 목숨을 앞에 두고 그렇게 진실을 어그러뜨리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국민의 상당수는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귀를 기울였고, 북한의 어뢰에 천안함이 격침됐다는 얘기를 믿었다. 북한과 결연된 아무런 증거가 없었는데도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조금이라도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건의 진실이 곡필과 과장으로 왜곡되는 과정을 지켜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의 모순에 관심이 많은 예술가의 눈에는 어떠했겠는가. 김도균 감독은 사건의 치부를 가리듯 천안함의 진실이 철저하게 은폐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보통 사람들의 네 곱절은 참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천안함 사건 1주기가 됐다고 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사라진 조건에서 그 진실을 가리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무슨 이유로 사건을 가리려고 했는지 말하고 싶었다. 사건 이후 어떠했나. 남북관계가 악화됐다. 그해 가을, 겨울에는 연평도에서 피격사건도 벌어졌다. 설마 했던 일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짜 맞춘 것처럼 모든 책임이 북한으로 가버렸다. 나는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북한에 돌리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수 있지만 너무 늦기 전에, 잊히지 않게 얘기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역추적해보았다.”
뭔가를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슴속에 품고 있을 때만큼 신념이 확고부동한 순간은 아마도 없으리라. 김 감독의 말에서 그러한 ‘신념’이 느껴진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천안함 영화를 만들겠다는 용기와 긍지가 찐덥다. 오늘날 예술가들의 움츠러든 패기와 열정에 힘을 불어넣을 귀감으로 삼을만한 일이다.
김도균 감독은 혼자 잘 논다. 스마트 폰을 들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뉴스가 있는지 검색하는 것이 취미다. 김 감독이 천안함 사건을 알게 된 것도 퇴근길에서 만지작거렸던 스마트폰을 통해서였다. 트위터에서 군함이 침몰했다는 속보를 봤다.
김 감독은 천안함 뉴스를 본 뒤 우울 모드에 빠져들었다. 막연하게 ‘인재’이거나 북한이 관련돼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작은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사고 같았다. 마음 한편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고 직감했다. 그런데 합동조사단은 갑자기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아무리 되짚어 봐도 합조단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비과학적, 비전문적이라고 묵살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 식으로 잡아가뒀다. 그래서 의문도 증폭됐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밝히는 것이 옳았다.”
김 감독은 즉시 영화제작에 착수했다. 영화를 찍어도 상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고, 혹시 모를 탄압으로 잡혀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부딪쳐서 뛰어넘어야 할 경계였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다가는 죽도 밥도 아니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두려웠던 점은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다. 장병 46명이 실종되거나 죽은 채 발견됐다. 유족들도 있고, 진실공방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김 감독은 마음을 굳건하게 세웠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로 마각을 드러내고, 진실 규명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수면 아래 가라앉은 사건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감독’이라는 입장에서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고, 사실을 그대로 담아내도록 노력해야 하고, 천안함 사건을 관객들이 쉽게 유추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것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은 천안함 영화 제작 소식을 들은 일반인들의 반응이었다.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100통 넘게 왔다. 메일 중에는 천안함 영화를 만든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정원에 신고하겠다고 겁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잡혀갈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대부분이 박수를 쳐줬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힘을 실어 주었다. 정부 기관이 판단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가 구린 것을 감추려고 하려면 모르겠지만 잡혀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 감독은 처음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좌초라고 생각했다. 스크루가 휘어 있는 모습과 천안함이 인양됐을 때 배의 밑바닥이 심하게 긁혀있는 것을 보고 좌초라고 여겼다. 하지만 영화를 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날 당시 대잠 훈련 중이었던 미군 잠수함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도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김 감독의 시각이 어떻게 정리돼 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취재하면서 중국에 갔다. 한국을 떠나 보니까 이 사건을 큰 틀에서 보게 됐다. 해외의 전문가들이나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천안함 사건을 한반도 정세와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사실 아직까지 사건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영화에서도 천안함 침몰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과 새로운 정보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관람객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사건의 무게만큼이나 이 영화를 만들면서 김 감독이 겪었을 부담이나 어려움도 많았을 듯싶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에 대한 부담보다는 일목요연하게 사건을 정리하는 일,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에 힘을 싣기 위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일이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뒤 민주당 의원실과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와 백령도 현지조사에 나섰다. 사건의 원인을 밝힐만한 것들을 발견해보려고 했지만 진실을 밝힐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출발할 때는 기대가 많았지만 되돌아오는 길은 힘이 쭉 빠졌었다. 또 영화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만나고 싶은 취재원도 많았다. 하지만 접촉 자체가 불가능했고,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이 영화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인물 인터뷰, 언론 보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민감한 사안이어서 인터뷰를 꺼린 사람이 많았지만 지구 한 바퀴에 이르는 동선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적 화법은 무척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 다양한 그래픽으로 부연 설명을 덧붙여 영화 천안함은 매우 쉽고 친절하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웨인메슨(Wayn Madsen)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제2의 통킨만 사건’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연락이 닿지 않아서 섭외가 힘들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교포들의 도움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시마츠요이치 전 재팬타임즈 편집장과의 인터뷰도 실렸다. 그는 미국, 중국, 중동에서 활동하면서 군사, 과학, 환경 분야의 취재를 전문적으로 해왔으며, 자신의 취재망을 총동원해서 천안함 사건을 분석한 인물이다. 모두들 인터뷰가 끝나면 영화를 꼭 보여 달라고 했다. 그래서 DVD타이틀로 제작해 우편으로 보내줄 생각이다. 아울러 영어 자막으로 더빙해 해외에도 소개하고 싶다.”
통킨만 사건은 월맹의 어뢰정 3척이 공해상에서 순항 중이던 미 구축함 매독스호 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이었다. 미국은 이 사건을 이용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했다.
예술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의 철저한 싸움, 대중의 냉혹한 평가, 경제적인 문제 등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것들과 기꺼이 마주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특히 예술은 주체의 철학과 노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따라서 예술은 티끌만 한 거짓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이유는 예술은 정치와 서로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된다. 김 감독이 이처럼 혹독한 예술의 길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왜 감독이 되려고 했을까?
“학창 시절에 풍물패에서 활동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다큐멘터리를 찍고 편집하는 것도 좋아했다. 내 관점으로 보는 세상을 내 방식대로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지금도 나는 주워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정리가 안 되는 점이 있긴 하지만, 이것들을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천안함 사건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정리가 잘 됐다고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김 감독은 첫 입봉작으로 심각한 주제를 들고 나왔다. ‘천안함’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계속해서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대중의 관심을 쫓겠다는 것일까.
“대중의 관심을 쫓아가려면 내 몸과 마음이 느려서 버겁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대중과 속도가 맞으면 좋겠다. 무겁게 접근할 생각은 없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처럼 대중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할 것이다. 또한 모방보다는 창조가 더 소중한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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