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박수형 화가 - 현대인들의 무료한 일상

이동권 2022. 9. 26. 16:32

박수형 화가의 작품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우리의 외모가 서로 다르듯이 교양, 성품, 지성, 영혼의 깊이에 따라 사람은 다르게 존재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기를 원하고, 자신의 미래 계획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모색한다. 그 삶이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자신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투신하길 바란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사는 모양은 매우 비슷하다. 아니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 무언가에 쫓긴 듯이 출근하고, 점심이 되면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게 배를 채우고, 여유 있게 차 한 잔 할 시간도 없이 맡은 일과들을 정리하다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와서는 TV 앞에 앉아 시간을 때우다가 다음날을 위해 붉은 볼펜으로 하루를 지운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지식도, 아무런 판단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남다른 재능이 있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이 천부적인 능력을 오직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잘 하는데 바치는 것을 매우 보편적으로 인식한다. 그 이상의 것, 자신이 추구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을 자신의 중심부로 끌어들이지 못해도 돈만 잘 벌고, 높은 자리로 올라서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박수형 작가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세상을 치유하는 정의로운 자, 미래를 걱정하는 평화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는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과 지겨움을 느끼고,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당함에 치를 떨면서도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을 잃은 채 파괴되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에 대해 연민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얽혀있고, 잠들어 있는 듯 눈을 감고 있다. 지친 숨을 몰아쉬고, 꿈과 현실을 오가며, 더 높은 곳을 향해 휩쓸려가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삶의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상식 밖의 일이라고 단정 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삶의 가치를 찾는 일이 부차적이거나 하찮은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가고, 내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고, 하고 싶지 않더라도 사회의 흐름 속에 나아가야 한다. 이런 삶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른다’라는 생각을 했다. 체념한 듯, 어쩔 수 없이 실려 가는 듯, 자는 건지, 포기한 건지, 의지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 우리 사회 이런 모습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그는 가치관, 이데올로기,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현실이 못마땅하다.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이러한 현실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확신한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작가의 따끔한 충고이자 진저리일 테다.

“역사를 보면 종교의 갈등에서부터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봤을 때는 그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꼭 지켜야 할 일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죽어야 할 게 무엇인지, 이데올로기 때문에 싸우는 게 맞는 것인지, 고민이 많이 들었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부싯돌이 서로 부딪쳐야 빛이 나듯이 서로 다른 견해가 자유롭게 부딪칠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르다.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시위를 해도 길이 막힌다고 난리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타인의 행동을 억압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불평등이 가장 큰 원인인 듯싶다. 다 같이 잘 살기 위해서 정치도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죽음 앞에서만 모두 평등하다고 하던데, 그것도 평등한 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의식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공동체 사회에서 재분배가 안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내가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면 정치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그런지 소극적일 수 있지만, 그림으로 풍자하는 재미도 있다.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정치를 해보고 싶다.(웃음) 어쩌면 정치가 진짜 예술일 수 있겠다 싶다. 참여해서 바꾸고 싶다는 생각, 꿈을 꾼다.”

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일까? 박수형 작가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사람과 일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는 천성이 사람을 좋아해 잔소리를 듣고, 그림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스트레스를 잠재운다. 그리고 가끔은 영화도 보고 운동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