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박성경 디자인하우스 출판영업 과장 - 빈익빈 부익부일뿐, 불황 아니다

이동권 2022. 9. 25. 00:47

박성경 디자인하우스 출판영업 과장


출판시장이 '불황'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정보를 얻는 통로가 다양해지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출판 시장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문을 닫는 출판사도 수십 곳에 이른다. 최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서점가에 주류를 이루는 현상도 출판시장의 불황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의구심이 든다.

박성경 디자인하우스 출판영업 과장을 만나 요즘 출판시장 상황과 인문사회과학, 실용서적의 변화 추이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출판시장이 위축된 게 아닙니다. 과거와 지금의 상황이 다를 뿐입니다. 과거에 대형서점은 교보문고 하나였지만, 지금은 대형서점이 많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출판사와 서점이 동반자관계였지만 지금은 출판사가 서점에게 조금씩 끌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서점들의 독과점과 출판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출판시장의 불황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사상 유례없는 불황을 겪었던 90년대 후반기에도 팔리는 책은 잘 팔렸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책 수요의 변화는 없습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서적의 수요가 줄었다고 말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인문서적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출판시장이 '불황'이 아니라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메이저급 출판사들은 매출이 늘어나고, 작은 출판사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거든요. 독자들의 요구가 다양하기 때문에, 책에 얼마만큼 투자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돈을 많이 투자하면 좋은 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종이나 디자인도 그렇고요. 대형 출판사는 질 좋은 책을 만들어도 생산원가에서 차이가 납니다. 부수가 많고, 거래도 많기 때문에 최대한 싸게 인쇄하고 제작할 수 있죠. 더군다나 중소 출판사에서 나온 책값과 비슷하다면 독자들은 어떤 책을 고를까요. 중소 출판사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돈 있는 출판사는 모험을 안 하기 때문에 자기 색깔을 가지고, 참신한 기획으로 승부를 보면 잘 될 것입니다."

대형서점의 점유율은 실로 대단하다. 인문사회과학서적은 대형서점이 40%정도를 점유하고 있으며, 실용서적은 30% 정도다. 이런 이유로 중소 출판사들은 대형서점들이 책을 싸게 달라고 요구하면 거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형 출판사에게는 이런 얘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이들이 서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거래 관행은 출판시장 규모에 대한 정확한 결과와 예측을 힘들게 한다.

"출판 시장의 규모는 누구도 얘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자료화 된 게 없습니다. 대한출판협회도 신간만 통계를 내고 있지만, 과학적인 데이터는 아닙니다. 가끔 영업직원들끼리 '함께 손잡고 대형서점 독과점 구조를 바꿔볼까'라고 농담처럼 말을 하기도 합니다."

대형서점 통로에 책을 진열하려면 별도로 돈을 내야 한다. 이러다가는 서점도 바둑판처럼 분할해 출판사에 임대하는 경우가 생길만하다. 물론 독자들은 다양한 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질 것이며, 서점은 문화공간이 아니라 슈퍼마켓처럼 상품을 파는 곳이 될 것이다.

"서점의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이 결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작가와의 만남도, 사인회도 책을 팔기 위한 이벤트로 전락했습니다. 대형서점들이 독자들에게 '서점은 공공장소'임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죠. 하다못해 책 광고지를 한 장을 붙이더라도 돈을 내야 합니다."

박 과장의 성토는 대형서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환경으로 이어졌다.

"서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며, 근무 시간도 길고, 일도 힘듭니다. 어떤 대형서점은 소사장제를 도입해 성과급을 주면서 기본급을 묶어놓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