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장동수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 사람 해부학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

이동권 2022. 9. 24. 21:35

 

장동수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정택용


장동수 화가는 2002년부터 연세대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에서 의학 삽화가이자 조교로 일하고 있다. 의학도가 아니라면 쉽게 체험할 수 없는 다양한 인체 해부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어떻게 하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Medical Illustrator)의 길을 걷게 됐을까? 

"이 기회에 배우지 않으면 해부학을 배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과대학 조교로 들어가게 됐죠. 하지만 처음 출근하던 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첫날 장동수 화가가 문을 열고 들어 간 실습실 안에는 테이블이 쫘악 깔려 있었고, 한편에는 시신을 모시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전날 새벽에 들어온 시신을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시신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보이는 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에 담담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제가 오기 전에 근무하셨던 윤관현 선생님께서 워낙 잘하셨기에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무섭다는 생각보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해부를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될 성싶었다. 직접 만져보거나 잘라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표현하기가 무척 힘들어 보인다.

"메디컬 일러스트지만 해부를 직접 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가는 주관적인 게 있지만 의학은 객관적입니다. 신경은 노란색, 동맥은 빨간색, 정맥은 파란색으로 표현하는 기준이 있는 것처럼, 각각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야 하기 때문에 해부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주일 동안 카데바(의학용 실습 시신)를 끌어안고 밤을 샌 적도 있었습니다. 저의 체온 때문에 시신이 따뜻할 정도였죠. 잘 적응해서 이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일념이 강했습니다. 의대생들은 더 합니다. 하나하나가 점수로 이어지는 데다 모두 경쟁자들이잖아요. 의과대학 공부는 정말 타이트합니다. 저도 그림도 그리고, 조교 역할도 해야 하니까 부담이 컸죠. 처음에는 의학 지식이 없어 고생은 했지만, 여러 선생님들께서 많이 배려해주셔서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모시고 있는 정인혁 교수님은 일본식으로 된 의학용어를 한글로 순화해 새로운 사람 해부학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대단한 분입니다. 외국에는 메디컬 일러스트라는 전문학과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양의학이 들어온 지 100년이 됐는데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의학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학문입니다. 복잡한 설명보다는 그림 한 장이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거든요."

그는 해부에 관한 일화들이 꿈에 나타나는 경험을 자주 하기도 했다.

"시신이 꿈으로 나타난 적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해부를 해야 하는데 카데바가 도망을 가서 잡으러 가기도 했죠. 또 꿈속에서 제 손이 해부가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저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지요. 그때 해부학 선생님이 나타나서 뭔가를 설명해 주시더군요. 몹시 몽롱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비가 되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해부하면서 벌어졌던 재밌는 에피소드도 곁들여 들려주었다.

"해부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달려가 봤더니 한 여자 선생님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퀴벌레'를 외치더군요. 양손에 시신의 팔을 들고서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그 선생님이 더 무서운데 말이죠."

의과대학 해부실에서는 시신의 팔과 다리를 잘라 해부를 하기도 한다.

장동수 작가의 꿈은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아직 한국에는 전혀 없는 직종이다.

 

"의학이 발전하는 동시에 저작권 문제도 많습니다. 독창적인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자리를 잡고 싶습니다. 순수미술을 하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를 하게 된 것처럼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메디컬 스컬프처'를 소재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사람들 모두 행복의 대상이 다르겠지만, 자신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