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구철회 화가 - 절망에서 찾는 희망

이동권 2022. 9. 25. 20:20

구철회 화가


구철회 화가의 그림은 가슴을 울린다. 전쟁으로 낯익은 모든 것들이 파괴돼버리고 비인간적인 힘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그림은 낡은 질서와 새로운 시선이 서로 융화되지 못한 채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을 꾸짖으며, 지난 세기에 걸쳐 서로 적대시하고 충돌해왔던 불화의 세계사를 힐난한다. 

그의 그림에는 폐허가 된 공간을 지키는 나무와 새들이 등장한다.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인간의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그는 이들을 화폭에 담아 '절망은 희망을 꺾을 수 없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한다.

구철회 화가의 그림은 사회적 사실주의에 기초한다. 1991년 대학 시절, 그 당시 사회분위기의 영향이 고스란히 천착된 결과다. 하지만 리얼리즘에 충실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사실주의보다는 오히려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이 좋다"는 그의 말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거나 재현하려는 창작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다. 

그의 그림은 시적사실주의(예술적사실주의)에 가깝다. 현실을 재현하지만 감상적인 정서를 중시한다. 객관적으로 관찰한 현실을 주관적인 감각으로 재창조하며, 개변과 장식적인 면에서 매우 중립적이다.

“제 그림이 민중미술 같기도 하지만 정말 민중성을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제 자신도 제가 타고난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윤범모(경원대 교수, 미술평론가) 선생님도 제 그림을 보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주제만 ‘반전평화’를 말한다고 민중미술적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어느 편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미술판에 많은 돈이 몰립니다. 예쁘고 발랄하고 상큼한 코드가 유행이죠. 후배 중에서도 전시 한 번 하면 1억 원은 챙긴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근데, 그런 그림은 저에게 맞지 않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큽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그를 고루하다고 말한다. 잘 팔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그는 시대에 뒤처져서 현실을 냉소하는 패배주의자, 어두운 과거로 회귀하려는 자폐적 수구주의자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고백한다.

“사회주의 혹은 북유럽식 사민주의, 천민자본주의, 전 지구적 연대, 민주노동당, 연방제 통일, 광주, 화려한 휴가, 신식민지, 신자유주의,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일용잡급 강의 노동자, FTA, MD, NPT, WASP, 맥도널드, 스타벅스, 한겨레신문, 양심적 병역거부, 조선일보 바로보기, 미얀마를 ‘버마’로 부르기 등은 제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런 단어들이 시대에 뒤처져 있는 넋두리처럼 들리나 봅니다. 그래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게 나쁜 것은 아니잖아요. 기억의 늪 속을 허우적거리면서 뒷북을 쳐대는 게 그렇게 나쁜 짓입니까. 좀 심각하면, 아니 ‘심각한 척’하면 안 됩니까. 예술도 꼭 그렇게 발랄하고 상큼하고 섹시할 필요가 없잖아요. 좀 칙칙해도 되고요. 전 그렇게 살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차갑고 뜨거운 표정이 뒤섞인 얼굴로 마지막 말을 잇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미술 작품도 선물 목록에 넣어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