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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우리나라 노래패 - 동포들에게 긍지를

우리나라 노래패


우리나라 노래패가 재일 동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일본으로 순회공연을 떠난다. 우리나는 오사카, 시가, 교토 등을 돌며 '우리 학교는 우리 고향이다'를 제목으로 6차례 무대에 설 예정이다. 물론 출연료는 없다. 그 흔한 초청 비행기 티켓도. 이번 공연은 모두 자비로 준비했다.

우리나라 멤버 이혜진, 백자, 이광석, 박일규, 한선희 씨를 만났다.

붉은 주홍빛이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백자 씨가 나직한 목소리로 첫 운을 뗀다.

"일정은 짧고, 연습은 많고, 잠은 모자라고, 아무튼 정신이 없습니다. 현장에서 판매할 음반도 오늘에서야 공장에 들어갔어요."

2007년 일본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정말 바빠 보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얼굴이 모두 밝다. 부스럼이나 주름살, 찡그린 입술은 찾아보기 힘들다. 재일 동포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좋은 마음이 모닥불처럼 타오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목덜미를 무겁게 짓누르는 일상의 노곤함은 있는 법. 긴 밤을 잠 못 이루게 만드는 우울한 일들이 궁금하다.

박일규 씨는 웃음이 만발한 얼굴로 동료들을 둘러보며 얘기를 꺼낸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와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바깥사람들보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서로를 잘 알죠. '오늘은 분위기가 아니구나'라고 느껴지면 건들지 않습니다. 기분이 좋아 보이면 궁금해 물어보고요."

상대방의 침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 항상 고독을 느끼며 사는 우리들이기에, 서로를 위해 가슴을 비워 놓고 사는 이들이 부러운 순간이다.

"재정문제야 오래된 고민거리지만, 자주 집을 비우게 돼 육아문제가 큽니다. 저도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있지요. 어제도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내가 '혼자 사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백자 씨의 말이다. 이에 박일규 씨가 한 단어로 정리한다.

"'하숙생'이죠."

이혜진 씨도 돌을 갓 지난 아이가 있다. 그녀는 "직장인처럼 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육아문제가 고민"이라면서 "싸운 적도, 미안한 적도 많다"고 덧붙인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이광석 씨가 다시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싸워서 이기는 게, 이기는 게 아니야."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그림자 하나 없는 사막에 있더라도 이들은 웃을지 모른다. 음악이 있기 때문이고, 마음 따뜻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시가 조선 초급학교에 일본 경찰 130여 명이 들이닥쳐 학부모, 교사, 학생들의 신상명세서를 가져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효고 총련 사무실에는 일본 경찰 600여 명이 몰려와 수색하는 일도 벌어졌죠. 이 과정에서 지난 공연 때 도움을 줬던 '효고 조선 가무단' 멤버가 다치기도 했죠. 북핵 개발 이후 재일 동포에 대한 일본의 탄압이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호방한 웃음을 지어 보였던 '백자'씨도, 다른 우리나라 멤버들도 모두 얼굴이 무겁다. 재일 동포들의 고통을 곁에서 나누지 못해 마음이 아렸던 까닭이다.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동포들의 초청으로 매년 공연을 해온 터라 총련 동포와 그 외 동포들도 많이 알거든요. 그래서 이번 공연을 자원해서 준비하게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고,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민족학교를 지켜왔던 일에 긍지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멤버들이 일본 순회공연을 떠나는 마음은 어떨까?

 

이혜진 씨는 일본 순회공연을 떠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탄압에 고통받는 분들께 힘을 드리기 위해 마련한 공연입니다. 딱히 마음 아파하고만 있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공연을 떠나게 됐습니다.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독자분들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또 우리나라가 기획하고, 후원을 받아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게 스스로 위안도 됩니다. 재일동포 여러분 힘내시길 빕니다."

백자 씨는 민족학교를 지켜온 동포들에게 긍지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제목이 '우리학교는 우리 고향이다'입니다. 우리 학교를 지켜오신 동포 분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떠납니다. 민족학교를 지켜온 의지에 부흥하는 메시지들을 공연 내용으로 담아내 보고자 합니다. 동포 1~2세들은 우리말을 할 수도 있지만, 3세부터 6세 꼬마들까지 우리말을 지키고 배우는 것을 보면 경외감이 듭니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통일된 조국에서 다 같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이광석 씨는 우리 민족의 통일 시대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다.

"2003년 처음 동포분들을 만났습니다.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과 한청(재일한국인청년동맹)에서 '우리나라 콘서트 실행위원회'를 통해 초청했죠. 그전에 금강산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지만, 북에서 느꼈던 것보다 마음이 더욱 뜨거웠습니다. 조국을 떠나 이국에서, 식민의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꿋꿋하게 민족의 혼을 지켜나가는 끈기와 용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남측 단체들과 주위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주는 게 고무적입니다. 재일동포들과 함께 교류하고 만나면서 통일시대를 맞았으면 합니다."

박일규 씨는 행복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많이 설렙니다. 힘들지만, 어서 가서 만나고 싶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의 공연이고, 작은 힘이지만, 그 시간만큼 편안한 시간이 되길 희망합니다. 2002년 금강산에서 만나 헤어질 때 눈물 흘리는 분들을 보면서 막연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2003년 동포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듣게 되면서, 2002년 이들이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행복합니다."

한선희 씨는 한편 부끄럽다는 반응이다.

"일본 공연에서 동포분들을 만났을 때는 통일에 대해 이성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우리 민족이니까'라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영화 '우리학교'를 보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의 반향이 커가고 있습니다. 일본 동포들에게 남측 사람들의 관심과 뜨거움을 전하고, 또 동포들의 마음을 남측 사람들한테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산다는 것이 질병보다 더 역겨울 때가 있다. 재일 동포들의 고통이 그러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의 근원은 대담하고 용기 있다. 서로가 서로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와 재일동포들의 만남이 무척 귀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