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보호자, 의사들에게 냉대받는 사람들
사람의 목숨을 다투는 일에
체면과 상황이 무슨 대수더냐.
가는 마음이 고약하면
되돌아오는 마음도 고약한 것을.
수술실로 가는 길.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이 팽팽하다. 환자 A씨는 반쯤 실실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옆으로 하얀 옷을 입은 병원기사와 순한 인상의 간호사가 동행한다.
“별일 없겠지?”
“잠깐 주무시고 나오면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간호사가 간곡한 어투로 A 씨를 안심시킨다.
복도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들이 멀리서 “저 남자 성격이 못됐어.”라고 쑥덕거린다. 심장병 병동 보호자들은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근심이 많다. 하룻밤 사이에 생사가 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 씨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A 씨는 짜증을 내거나 성화를 부리며 병동을 돌아다녔다. 그래서 모두들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A 씨의 얼굴이 갑자기 수척해졌다.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람처럼 뺨에 윤기가 사라졌다. 당당한 걸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생사의 갈림길을 오고 가는 처지가 됐다. 삶은 그 자체로 기쁘고도 슬픈 일이다.
별의별 환자들 많다
수술실에 들어간 간호사는 A 씨의 갖가지 기록이 적힌 차트를 다른 간호사에게 넘긴 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나온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는 눈빛으로 말을 건넨다.
“누가 봐도 별난 환자에요.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화를 내더라고요. 제가 환자분에게 병을 드린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해서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하는데, 함부로 대하세요. 저 환자는 정말 상대하기 힘들어요.”
일반병동에서 일하는 김미연 간호사의 말이다.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눈은 벌겋게 충혈이 돼 있다. 성격이 어떻든 수술실로 들어가는 환자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김 간호사도 그런 환자의 마음을 아는 듯 숨을 고쳐 쉰다.
“화내면 뭐하겠어요. 참는 거죠. 아픈 사람이니 이해해요. 저희 병원을 찾은 고객이기도 하고요. 일이 힘들기보다는 저런 환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나이 드신 어르신들 중에는 막무가내로 고함지르고 화내는 분도 계시고요.”
최순옥 간호사는 화내는 환자들을 다루는 노하우가 있다. 최 간호사는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접근한다.
“사회경험이 없을 때는 성격이 남다른 환자들을 보면 피하고 봤는데, 먼저 말을 걸고, 웃고, 칭찬해주면 금세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람 다루는 방법이 생긴 거죠. 힘든 상황에서도 친절하게 대하면 먼저 찾고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경우에는 저만 찾는 환자도 있고요. 자기 처지를 알아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힘겨움을 즐거움으로 변용하는 능력은 어쩌면 타고 난 성품.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노력 없이 되는 게 있을까. 밝고 환한 모습으로 환자를 맞이하는 그녀에게도 간호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어 그만두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자가 있었어요. 전날 2달분 약을 가져갔는데 다음날 또 찾아와서 약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몸에 좋지 않은 약이어서 주지 않았는데 행패를 부리고 병원을 다 뒤집어 놓았지요. 어쩔 수 없이 경찰서에 연락해야 했어요.”
뿐만 아니라 3교대로 일하는 근무여건도 간호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게 한다. 일반병동 간호사들은 보통 3교대로 일한다. 환자들의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밤중에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시간을 근무해도 나이트(밤 10시 ~ 새벽 6시 근무조)는 더욱 힘들다. 신체 리듬이 깨지기 때문이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보통 간호사는 아침 6시나 7시 출근을 주기로 8시간마다 근무가 변경된다. 출근하면 전 근무자에게 숙지할 사항을 인계받고 병실을 둘러보면서 바이탈(혈압, 맥박, 체온 등)을 체크한다. 식사는 짧게 교대로 먹는다. 큰 병원의 간호사들은 팀을 나눠 병실을 맡는다. 외래진료가 있는 의사와 함께 회진하는 간호사는 보통 9시 전에 돌며, 보통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병실을 둘러본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수술실이나 일반병동보다 스트레스가 더하다. 조급한 마음에 대뜸 화내고 채근하는 보호자들 때문이다. 환자가 고통스러워할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응급실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미희 간호사는 “교통사고로 실려 온 초등학생이 있었는데, 보호자가 오자마자 사고 운전자에게 삿대질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또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붙잡으면서 ‘내 아들 죽으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던 일을 떠올렸다. 조폭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 그렇지만 이 간호사는 “뇌사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병원에 도착해 미리 손을 쓰기도 전에 죽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에 응어리 같은 게 하나둘씩 생긴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선경 간호사는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보가 많아지면서 환자들도 전문가가 다 됐다.”면서 “이런 치료도 있는데 왜 해주지 않느냐, 이런 경우에는 저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보호자도 있다.”고 말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상하관계?
수술실로 들어간 A 씨는 좁은 복도를 지나 ‘전실(처치실)’에 들어간다. 간호사는 A 씨의 인적사항과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또 수술을 해도 괜찮은지 금식여부, 혈압, 체온 등을 꼼꼼히 체크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는 이유는 환자가 뒤바뀌거나 수술 중에 발생할 위급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어디 편찮은데 없으세요? 이불 드릴까요?”
간호사는 A 씨가 불편한 게 없는지 이것저것 묻는다. 또 A 씨가 궁금해 하는 질문에 답한다. 이를테면 수술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며, 마취했다가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 등의 질문이다.
A 씨는 준비가 끝난 뒤 수술실에 들어가 마취를 기다린다. 아직까지는 정신이 또렷해 불안함과 긴장감이 얼굴에 잔뜩 서려 있다. A 씨 옆에는 이미 수술상이 차려졌다. 간호사는 멸균된 수술 도구의 개수를 정확하게 셈한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뒤 숫자를 체크해 바늘이나 거즈, 수술도구 등이 환자 몸속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한다.
마취과 의사는 진통제를 주입하기 위해 A 씨에게 관 같은 것을 혈관에 미리 삽입한다. 또 수액이나 혈액 등을 주사하기 위해 라인을 잡는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상이 발생하면 마취과 의사가 수술을 취소할 수 있다. 마취한 뒤 깨어나지 못하거나 위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 준비가 끝나면 의사들이 손을 씻는다. 소독제와 비누액을 손과 팔에 발라 솔로 문지른다.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감염을 일으킨다. 물은 손을 대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무릎으로 조절한다. 수술실로 의사가 들어오면 간호사는 의사에게 수술가운을 입히고 수술 장갑을 껴준다. 수술실에는 수술 도구 등을 맡는 간호사와 수술 중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간호사가 있다. 수술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명 정도가 수술에 배치된다.
간호사는 환자의 몸에 수술포를 덮는다. 수술할 부위만 빼놓고 환자의 몸은 모두 녹색 천으로 덮인다. 모든 세팅이 끝나면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로 환자의 의무기록과 사진을 살핀 뒤 개복에 들어간다. 피부를 절개하고 보조기구로 수술대 옆을 고정시켜 수술 부위를 벌린다. 고정할 필요가 없으면 레지던트가 잠시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수술이 시작되면 마취과 의사는 환자의 바이탈 사인을 계속 모니터링 한다. 이 순간은 최고의 집중과 정확성이 필요하다. 이때는 수술실에 있는 온갖 수술 도구들이 내는 작은 소음만이 정적을 깬다. 어떤 의사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수술하기도 한다. 과도한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다.
의사가 수술도구 이름을 나지막이 외치면 간호사가 건넨다.
“바스큘라 클램프(curved vascular clamp; 휘어진 혈관 집게)”
“프롤린(proline 5-0; 혈관을 꿰매는 수술용 실의 일종)”
경력이 찬 간호사들은 의사가 얘기하지 않아도 상황에 맞게 수술도구를 챙긴다. 이 상황에서 다른 도구를 주거나 미적미적하면 의사에게 여지없이 쓴 말이 터져 나온다. 심지어는 의사가 수술기구를 간호사에게 던지는 경우도 있다. 모 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 이들은 수술실에서 극심한 언어폭력과 비인간적인 모멸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박선경 간호사는 “대부분의 의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입에 담지 못할 욕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사들이 수술에 집중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좋지 않은 말을 합니다. 반말은 물론 심한 욕설도요. ‘야.’, ‘이것 좀 줘봐.’, ‘바보야.’ 등이죠. 이보다 더 심한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수술실에서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환자 때문에 어쩔 수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는 레지던트도 예외일 수 없다. 정미자 간호사는 “교수들이 레지던트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면, 레지던트가 간호사들에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나라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상호 협력 관계에서 환자 치료에 매달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상하 관계인데다 남성 중심적인 사고가 만연해 있어 간호사들의 고초가 더욱 크다. 때문에 병원마다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QI(Quality Improvement)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곳이 많다. 진료 과정을 간소화하고 고객 만족도를 높여 병원 수입도 올리고 근무 환경도 개선해 보자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박선경 간호사는 “그래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박 간호사는 “근무가 불규칙하고 오래 서 있는 데다, 수술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응급수술을 할 때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면서 “응급 환자 때문에 밤에 전화를 받고 출근하는 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응급실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이재영 간호사는 “수시로 긴장되는 상황이 많다.”면서 “갑자기 피가 터지고 심장이 멈췄을 때 전기충격기를 사용하게 되면 무섭다.”라고 말했다. 환자가 죽을까봐 겁부터 난다는 것. 이 간호사는 “똑같은 수술인데도 교수진마다 방법이 달라서 간호사들이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다.”면서 “그래도 하는 수 없이 교수에게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죄인 아닌 죄인처럼 살아가는 간호사들
수술도중 위급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출혈이다. 출혈량이 많으면 출혈부위를 찾아서 지혈기구로 집어두거나 전기소작기로 지진다. 순간 수술실은 단백질 타는 냄새로 진동한다. 또 혈액이 부족하면 주사로 혈액을 투여한다. 그리고 수술이 끝나면 자동문합기로 절개된 부위 끝을 압착해 꿰맨다. 하지만 봉합 후 심장이 갑자기 뛰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럴 때는 전기충격기로 소생술(CPR)을 시도한다.
가끔은 수술 과정에서 ‘의료사고’나 ‘어쩔 수 없는 오해’가 발생한다. 보통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할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 하지만 간호사들도 병원 관계자라는 이유로 보호자들에게 시달리며 죄인 아닌 죄인이 된다. 정미자 간호사는 “수술을 진행하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를 꼭 받는다.”면서 “교수님들도 이런 상황에 아주 민감하다.”고 말했다.
“중학생 환자가 있었어요. 요골이 골절됐는데 워낙 심하게 벌어져서 수술했죠. 감기가 심한 상태였는데, 학생은 수술 후 골수염에 걸렸어요. 뼈가 썩는 병이지요. 뼈에 염증이 오면 1년 넘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다 뼈에서 고름이 나오니까 매일 드래싱하고, 약도 강해 환자들이 무척 힘들어해요. 병원에서는 잘못이 없다고 말했지만, 보호자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어요. 병원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니까 더욱 사납게 매달리죠. 병원 관계자들만 보면 다 밉고요. 학생이 있는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죄인이 되는 심정이었어요.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병원을 그만둘 수도 없고요. 정말 의료사고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요.”
40세 초반 남자 환자는 아주 흔한 음식을 먹었는데,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다.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고 갔는데 2시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보호자가 입장에서 보면 의료사고가 분명하죠. 그래서 이 사고는 송사에 휘말렸고, 부검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지만, 주사를 맞고 나서 생긴 일이니까 보호자 생각이 옳다는 느낌도 들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도 제 몸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특이 체질이지요. 의사는 별다른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으면 약을 주사해요. 사람한테 쓰기 때문에 신중하게 만든 약이거든요.”
응급수술을 하다보면 환자가 죽는 경우도 발생한다. 박선경 간호사는 그럴 때 “방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있다.”고 말했다. 또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나 갓 태어나 몸무게가 2.5kg밖에 안된 아이가 수술받으러 올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박 간호사는 “수술이 잘 끝나서 퇴원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면서 “이런 기분 때문에 간호사 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재영 간호사도 “환자들이 수술이 잘 됐다고 격려해줄 때 고맙고 보람을 느낀다.”면서 “환자들이 감사의 표시로 떡이나 과일을 수술실로 보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선경 간호사는 “위급한 상황에서 일하다보니 마음이 냉철해지고 차가워지는 것을 느낀다.”면서 “성격도 정확해지고 실수하는 것을 참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15여년을 간호사로 일하면서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전문 의료인이 되어 버렸다.
요즘 병원에서는 남자간호사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남자간호사의 일이 여자간호사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자간호사나 여자간호사나 하는 일은 똑같다.
환자 A 씨의 수술이 끝났다. 마취과 의사는 A 씨가 마취에서 깨어나는지 확인한다. 전신마취를 한 경우에는 수술이 끝나면 30분 정도 회복실에 머문다. 보통은 잠시 회복실에 들린 뒤 병동으로 옮겨진다. 상태가 심각한 환자는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곧장 이동한다. 일반병동과 중환자실로 이동하는 환자는 카트에 실리는 기구들이 달라 확연하게 구분된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간호사가 되었으면
누가 봐도 80세로 보이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이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가끔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노인의 몸에서 이상한 징후를 발견하고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노인은 항상 늘 혼자 왔다. 자식이 따라오지 않았다. 하루는 아들과 함께 왔다. 아들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의사는 아들에게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은 나이가 들어 그렇다면서 ‘그만큼 살았으면 족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들은 또 아버지에게 ‘병원에서 돈 벌려고 그러는데 다 받아주면 되냐.’며 핀잔을 주었다. 얼마 후 노인의 친구가 병원에 들려 그 노인이 죽었다고 전했다. ‘자식들한테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겠느냐.’, ‘왜 이렇게 안 죽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다 자살했다는 것. 며칠 전까지 그 노인을 돌봤던 최순옥 간호사는 다리에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자식 키울 때는 부모님들이 힘들게 키웠을 텐데. 연세 드신 분들은 치료비가 가장 걱정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능력은 없어지고 자식들은 돌보지 않거든요. 버림받는 노인들, 혼자 사는 노인들, 실제 혼자 살지만 호적에 가족이 등재돼 있어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해요. 보증금이 없어 죽을병에 걸려도 입원조차 못하고요. 중국동포나 이주노동자들도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합니다. 돈을 벌기도 전에 얼마 남지 않은 돈마저 치료비로 다 날려버릴 거예요. 뭔가 적절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삭막하게 변해갈수록 간호사들의 마음도 점점 차가워져만 간다.
박선경 간호사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참을성도 부족하고 조금만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그만 둔다.”면서 “어떤 순간에서도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간호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간호사들도 자기계발에 신경을 써서 장기적인 인생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직장에 다니면 사회에도 도움이 안 되고, 본인한테도 손해이며, 여러 사람한테 피해를 준다.”고 충고했다.
최순옥 간호사는 “사명감을 가지고 배우려는 젊은 간호사들도 있지만, 편한 것만 좋아하고 힘들고 지저분한 것은 만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자보다 자신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 최 간호사는 “주사를 놓다가 환자가 토하면 손으로 받을 수 있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은 후배들을 보면 충고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간호사는 “선배가 조금만 싫어하는 소리를 하면 입부터 나오고, 모르는 것을 알려줘도 혼내는 것으로 안다.”면서 “후배들에게 알려주려고 해도 후배들은 그것을 오해하고 고마운 줄 모른다.”고 말했다.
암 말기 환자들은 통증이 심해 마약성분과 비슷한 진통제를 먹는다. 이 약은 통증이 줄여주지만 장기 마비를 일으킨다. 장운동이 원활하지 않아 변이 장 속에서 굳어버린다. 환자 혼자서 변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호사가 손가락을 넣어 긁어내야 한다. 굳은 변이 제거되면 장내에 남아 있던 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환자도, 간호사도 모두 변으로 범벅이 된다. 환자는 간호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 진한 마음속에 더러운 ‘똥물’은 사랑이 되고, 간호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정순희 간호사는 “의사나 환자나 간호사를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그래야 간호의 질도 높아지고 환자 치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경 간호사도 “간호사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인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환자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간호사들이 있어 삭막하고 우울한 병원생활도 견딜만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간호사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눴으면 한다.
간호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3년제나 4년제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해 공부하고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합니다. 간호학원에서 공부하면 간호 조무사로 일합니다. 간호학은 생활에 두루 쓰이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면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영어를 잘하면 항공사 스튜어디스 시험에서 대부분 합격합니다. 단 스튜어디스는 외모와 태도를 중시하니, 그런 점에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도 좋습니다.
간호사 연봉은 얼마나 되나요?
간호사 급여는 병원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연차가 중요하긴 하지만 병원의 크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지원할 때 근무 조건을 따져보길 바랍니다. 초봉은 보통 2~3천만원 정도 됩니다.
남자 간호사에 도전하세요.
백의 천사, 간호사는 이제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간호사가 전문직이 되고, 취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남자 간호사를 하려고 취업 준비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연봉이 다르지 않은 데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쉽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남성 지원자들이 급증했습니다. 남자 간호사는 전문 능력만 갖춘다면 일반 기업 정도의 수입은 보장됩니다.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면 의무병으로 군대에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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