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산불을 감시하는 사람들
변덕스러운 산들바람을 따라 걷다 보니
영혼 깊은 곳에서 자유롭고 맑은 입김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사소한 실수로 타버린 산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최소한 이삼십 년.
공연히 눈꺼풀이 깜박거리고 떨린다.
따뜻한 늦가을. 나뭇잎이 더욱 거칠게 메말랐다.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부스럭’하고 부서진다. 나뭇가지도 삭정이처럼 말라비틀어져 금방 ‘뚝’ 소리를 내며 꺾인다. 논두렁을 태우다 작은 불씨라도 날아오면 석유를 끼얹은 장작불처럼 거세게 타오를 것만 같다.
나뭇가지 위에 엉거주춤 서서 나를 바라보는 다람쥐 한 마리가 또렷하고 귀여운 꼬리를 휘저으며 모습을 감춘다. 나무 꼭대기에 점잖게 걸려 있는 주황빛 태양은 산등성이를 뒤덮고, 소리 없이 불어오는 늦가을 바람은 푸른 구름을 밀어내면서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마을 어귀에서 한 할머니가 허리를 손으로 받친 채 붉은 잡목으로 이어진 숲을 쳐다보고, 낡은 가구와 땔감들을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농가 마당에는 볏을 세운 수탁이 긴 울음을 토해낸다. 참으로 평화롭고 정겨운 풍경이다. 하지만 불씨 하나면 이 모든 게 잿더미로 바뀐다.
1996년 4월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 2000년에도 큰불이 나 산야를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수심이 낮은 개울에 사는 도롱뇽은 검붉게 익어버렸고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한 고라니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심지어 겨울잠을 자던 뱀도 모두 타버렸으며 여름이면 울창한 잎을 드리우던 신갈나무도, 서어나무도 모두 시커멓게 그을려 죽었다. 그야말로 산골짜기와 계곡은 공동묘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산불은 인간의 터전도 어김없이 불모지로 만들었다. 집이며, 유실수며, 소, 닭, 농기계 할 것 없이 죄다 새까만 숯이 돼버렸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상상이 머릿속에 번진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이 계절에는 유독 산불이 극성이다. 줄기에 감긴 넝쿨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나무의 운명처럼 산은 바람 때문에 비참하고 참혹한 몰골로 변한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바람이 세차게 불면 산은 희디흰 연기로 뒤덮이면서 초토화되고 만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산불 다발지역에서는 산을 지키는 사람들이 조직된다. 내가 찾은 강원도 고성군에도 지역 주민들을 주축으로 하는 전문진화대, 감시원 등이 배치돼 논두렁 밭두렁 태우기, 쓰레기 소각행위 등을 감시했다. 또 고성산, 노인산, 죽왕면 인흥리, 구성리, 거진읍 초계리 등 5개소에 무인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24시간 감시체제에 들어갔다.
위험해도 뿌듯한 일
산불을 감시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누가 뭐라 해도 비탈진 초원과 기다란 골짜기에 사는 생명들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비록 적은 임금이지만 산짐승들이 신나게 노닐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산촌 마을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뛴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무관심의 대상이다. 이재민이 발생하고 수많은 생명들이 죽음에 이르러도 딴 나라 먼 곳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이런 것을 보면 도시인들은 농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모질다.
이들은 지역 주민에게도 살가운 대접을 받지 못한다. 행여 논두렁에 불을 놓고 있는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간 “니들이 뭔데 불을 끄라고 해.”라는 호통이 돌아온다. 강원도에 큰 산불이 자주 발생하면서 인식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무관심과 푸념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어르신들이 논두렁에 불을 놓는 것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싸웠어요. 제 입장과 농사꾼 입장은 다르잖아요. 아직도 바람 없는 날 일제히 소각하자고 말씀드려도 모른 체하는 어르신들이 있어요. 요즘은 많이 변하긴 했지만요. 저희들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홍보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산불전문진화대원 박규철, 권해연 씨의 얘기다. 이들은 ‘논두렁’에 얽힌 실랑이를 함께 겪어온 탓인지 비슷한 말을 했다.
“하루 종일 운전하며 돌아다니니까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힘든 것은 없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비가 오면 쉬어야 하고, 급료도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산불을 감시하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에요.”
권해연 씨는 전문진화대원으로 5년째 일하고 있다. 친구의 권유도 있었지만 돈이 필요해서다. 박규철 씨도 우연한 기회에 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진화대원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 지역에서 산불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군민으로서 자연스럽게 책임감을 느끼는 면도 있는 듯싶었다.
“사이렌 소리만 나도 걱정이 돼요.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뿐이죠.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불을 잡고 나면 ‘내가 껐다’는 자부심이 커요.”
자나 깨나 산불 조심
“군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6인승 1톤 트럭을 개조한 소방차가 산불예방을 당부하는 방송을 틀었다. 조용하던 군 소재지가 잠시 술렁인다. 회색 외투를 입은 군민도, 전투모를 눌러쓴 군인도, 아이를 업은 젊은 새댁도 부자연스럽게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에 잠시 신경을 곤두세운다.
잠시 후 대원들은 가까운 소방서에 들렀다. 일반 수도관은 파이프 크기가 너무 작아 물을 채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산불은 왜 일어나는 거예요?”
“논두렁에서 나는 불은 노인들이 내는 경우가 많지만 군사지역에서 나는 불은 군인들이 내는 거예요. 민간인들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불이 나면 군에서 낸다고 봐야죠. 근데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불 내놓고 군에서 나 몰라라 하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군사지역에서 불이 나면 사단장까지 문책을 받기 때문에 무척 조심해요. 산불 진화도 군 도움 없이는 힘들고요.”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자연발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논두렁 태우기, 등산객들의 실화, 어린이들의 불장난, 군인들의 부주의로 일어난다. 특히 군부대가 많은 강원도는 군인들에 의해 자주 발생한다.
1996년 고성 산불은 육군 모 부대 폭발물 처리반이 노후된 TNT를 처리하던 중 유탄이 숲 속에 떨어지며 불씨가 옮겨 붙었다. 그 당시 이 지역 부대에서 복무했던 한 예비역에 따르면 북한에 선전지를 실어 보내는 풍선이 비무장지대에서 터져 불이 나기도 하고, 밤에 예광탄으로 사격 연습을 하거나 지뢰가 터져 발화되는 경우도 있으며, 쓰레기를 소각하다 남은 잔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산으로 번지는 일도 있다.
마을을 순찰하던 진화대원들은 올해 초 산불이 발생했던 장소로 나를 안내했다. 화마의 상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곳은 묘지에 향을 놓다가 불씨가 날아간 게 화근이 됐다.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큰 불이 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죽음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여전히 나무들은 벌거숭이처럼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고 검게 탄 흔적들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참으로 아찔하고 참담한 풍경이었다.
묘지 건 편도 큰 산불이 발생했던 곳이다. 현재 그 자리에는 대규모 골프장이 들어섰다. 산불이 나면 복구하는 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골프장이 들어설 때 반대가 심했어요. 아무래도 농약이나 오폐수가 많잖아요. 동해안은 환경오염 때문에 바다 수온이 많이 올라간 상태예요. 명태를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죠. 그 대신 양미리와 도루묵이 새로운 명물이 되긴 했어요.”
진화대원들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쓴웃음을 던졌다. 이런 게 인간과 자연을 못살게 만드는 자본의 논리가 아니겠느냐는 뜻이었다.
생명을 위협하는 산불
우리나라는 전국토의 65%가 산이다. 이 중 97%가 산림이다. 특히 불에 타기 쉬운 침엽수가 많고, 대부분이 산악형 산림이어서 산불이 발생하면 연소 진행 속도가 평지보다 8배나 빠르다. 바람이 불 경우에는 근접 진화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또 1973년부터 실시된 낙엽 채취 전면 금지 등으로 산에 가연성 물질이 많아져 산불 발생 빈도가 증가했다. 한번 불이 났다 하면 순식간에 대형화재로 번진다. 따라서 산불 진화작업도 더욱 고단하고 위험천만한 일이 됐다.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양양 낙산사에 불이 나 지원을 나갔어요. 문화재까지 소실되는 큰 불이었죠. 다들 모르겠지만 그때 고성 명파에서 더 큰 불이 났어요. 동시에 불이 났는데 낙산사에 문화재가 많으니까 헬기가 먼저 뜬 거예요. 그동안 명파는 완전히 타버렸고요. 기분이 착잡하더라고요. 불이 나는 거 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속이 타들어가거든요.”
“작업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었겠어요?”
“두 번 있었어요. 5분이면 오겠구나 생각했는데 30년 만에 바람을 타고 불이 확 다가오더라고요. 장비 같은 거 다 팽개치고 도망갔어요. 겨우 살아났지요. 그 일을 겪은 뒤로는 불이 무섭고, 불이 난 곳에 들어가면 공포를 느껴요. 한번은 연기 때문에 불이 안 보이는 경우도 있었어요. 위에서 내려오는 불을 발견하고 급하게 내려가는데 밑에서 불이 막고 있더라고요. 위에서는 밑을 모르고, 밑에서는 위를 모르는 게 산불이에요.”
숨통을 죄어오는 산불에 된통 혼난 뒤에도 진화대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불로 뛰어든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동적, 자발적으로 그렇게 된다.
“산불을 보면 무조건 꺼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스스로 불을 다스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정신을 집중하면 산불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은 바람에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게 산불이다.
조금이라도 자연의 소중함에 동의한다면 함부로 불을 놓거나 방심하는 일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우쭐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법이 존재한다. 허가 없이 산림이나 산림인접지역에 불을 놓거나 입산통제구역 입산자 등에게 과태료 처분을 내리고 형사 고발 조치를 한다.
“진화대원을 하면서 일상에 변화가 생겼나요?”
“소리에 민감해졌어요.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불안해요. 앰뷸런스 소리에도, 전화 소리에도 신경이 쓰이고요. 모닝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도 바로 일어나죠.”
권 씨는 나에게 핸드폰 벨소리를 들려준다. 아뿔싸. 사이렌 소리다.
가파른 언덕너머, 소나무들이 하늘로 연연히 가지를 뻗은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독의 전조가 물씬 풍기는 작은 초소가 나타났다.
초소는 산불 감시가 용이하도록 사람 키만큼 높게 올려 지어졌다. 사방은 밖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유리로 돼 있다. 산불감시원들은 이 창을 통해 동서남북을 둘러보면서 연기가 나는 곳을 샅샅이 살핀다.
초소 옆에는 군청 상황실에서 산불을 감시하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카메라는 산불감시원이 퇴근한 후에도 360도로 회전하면서 산을 관찰한다.
산불에 대한 공연한 상상으로 마음이 수척해졌다. 하지만 초소에서 산마루를 넘어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니,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금세 마음이 밝아졌다. 고향을 찾는 사람의 마음처럼 생기가 돌았다.
산을 지키는 사람들 때문에 이러한 풍경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태하고 천박한 마음까지 정화되는 것 같았다.
산은 사람들을 늘 같은 모습으로 품에 안아준다. 변함없는 이해와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작은 불씨 하나를 소홀하게 대한다면 산은 끔찍한 재앙을 내릴 것이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참혹한 재앙을.
예방이 중요해요
입산통제에 잘 따라주세요. 날이 건조해 불이 나기 쉬운 날이거든요. 또 가급적이면 건 가 있는 곳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말고요.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태울 때도 불씨가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리고 시간이 되면 꼭 산불예방교육을 받는 거 잊지 말고요.
쉽게 보다가 큰코다쳐요
산불이 나면 바람이 부는 반대방향으로 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금방 화마가 덮쳐요. 화염이 커지면 입과 코를 가리고 가급적이면 빨리 대피하세요. 대피할 때는 복사열에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산불보다 낮은 곳으로 가세요. 또 산속에 있는 가옥에서 산불을 만나면 집안의 문을 모두 닫고 집 주위에 물을 뿌리세요.
포상금도 있다
산림청에서 산불 예방을 위해 산불 신고 보상 제도를 운영해요. 봉대산 산불방화범 신고 같은 경우는 포상금이 1억 원이었다고 하네요.
산불이 났어요
산불이 나면 놀라지 말고 일단 119나 산림 관련 시설, 경찰서에 신고하세요. 작은 불씨 같은 경우에는 외투를 이용해 진화해주고요.
방화는 안 돼요
산에 불을 지르면 1년 이상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 및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져요. 잘못해서 불이 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이고요. 허가 없이 산림이나 산림인접지역에 불을 놓거나 불을 가지고 들어가면 과태료가 50만~100만 원이에요.
산불감시 초소는 어때요?
초소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숲 냄새로 가득하지만 고독의 정취 또한 가득합니다. 하늘은 납덩이같은 무게로 짓누르고, 나무들도 바람을 따라 가지를 흔들며 적막감을 더합니다. 라디오와 무전기가 없으면 무인도나 마찬가지였어요. 세상과 단절돼 있는 느낌입니다.
가을에 시골에 가면 산불감시원을 만날 수 있어요
차분한 가을 햇볕이 내리쬐는 시골 마을. 태양은 점점 차가워지는 대지를 덥히기 위해 땀투성이고 추수를 끝낸 누런 들판과 푸른 침엽수림은 겨울잠에 빠질 준비를 합니다. 외양간의 소들은 여유롭게 마른 짚을 오물거리며 가느다란 고드름이 처마 끝에 매달릴 날을 기다립니다. 겨울이 시작할 조짐이 보이는 강원도는 들뜹니다. 곧 있으면 골짜기, 마을마다 새하얀 갈퀴를 드러낸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에 불이 붙지 않으면 산은 아무 걱정 없이 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계절에 시골에 가면 멀리에서 오토바이를 탄 할아버지가 동네 어귀를 빙 돌아다닙니다.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는 길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산불감시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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