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 먼지에 시달리는 사람들
신문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면서 삶의 참된 의미를 구한다.
우리의 생명과 우리를 보는 눈을 키워주는 이 귀중한 토양이
누구의 손에 의해서 탄생하는지 아는가.
그 가치와 소중함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으리라.
밤이 꽤 깊었다. 이따금씩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한 빛이 없었다면 무섭게 짓누르는 어둠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반시간쯤 지나자 거리 끄트머리에서 쉴 새 없이 지나가던 자동차 불빛도 뜸해졌다. 세상이 점점 암흑이 돼간다.
털이 북슬북슬한 고양이 서너 마리가 쓰레기봉투를 찢다 몸을 낮췄다. 인기척 때문이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고양이들은 다시 노란 눈을 번득이며 쓰레기봉투 입구에 주둥이를 집어넣었다. 거리에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고양이들에게는 무덤덤한 일상에 불과했다.
충무로. 인쇄골목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한밤중에도 낮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로가 쌓인 얼굴로 방금 인쇄된 종이를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의자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들이켜면서 인쇄 기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계가 멈춰있는 인쇄소도 많았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이 맞는 듯싶었다. 작은 건물 주차장에서 운동복과 줄무늬 바지를 입은 남자들이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곧장 이들에게 달려갔다.
“인쇄소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요.”
“무슨 일인데요? 저희는 곧 들어가서 일해야 해요.”
한 남자가 주춤하는 기색도 없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간곡함이 깃들어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더 이상 부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싶어 다른 인쇄소로 발길을 돌렸다.
잠시 후 다른 인쇄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콧수염과 턱수염이 현실과 동떨어져 살고 있는 느낌을 주었지만, 순한 눈빛과 동그란 얼굴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그는 내 설명을 듣더니 ‘얘기만 해주면 되냐’고 물으면서 “예전에 서울경인지역인쇄지부에서 활동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인쇄노동자 박 씨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송년회에 참가하기 위해 일을 마치고 모임 장소로 가던 중 음주단속에 걸린 것. 그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지만, 음주측정기는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 수치를 가리켰다. 전에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던 그는 “인쇄를 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경찰서에 가서 음주측정을 제대로 하자고 제안했고, 알코올은 검출되지 않았다.
그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인쇄노동자로 일한 지 만 11년이 됐다는 김 모 기장(인쇄 책임자)의 설명으로는 ‘인쇄 잉크’가 원인이라고 했다. 사업장 안에서 진동하는 비산잉크와 먼지, 유독성 약물 때문에 사업장 내 공기오염이 심각하다는 것.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인쇄소가 영세하고, 정화시설을 설치할만한 인식이 부재해 개선은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인쇄노동자들은 계속 서서 일하기 때문에 허리와 어깨, 관절 등에 찾아오는 ‘근골격계질환’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
그는 “장시간 노동으로 피로가 누적된 데다 허리, 무릎 통증까지 더해 녹초가 된다.”면서 “여름철에는 피부질환도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협소하고 불결한 작업환경이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면서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은 그다음 문제’라고 덧붙였다.
옆에 서있던 20대 후반의 한 노동자는 “업무를 끝내고 씻을 수 있는 샤워 시설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거들었고 20년 경력의 이정주 공장장은 “소음 때문에 귀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인쇄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면 귀가 먹먹해진다는 것. 그는 ‘아직은 괜찮은 편인데 나이가 들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면서 ‘소음성 난청은 일종의 인쇄소 직업병’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름철 무더위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에어컨이 부족해 사업장이 무척 덥다는 것. 실제 인쇄골목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인쇄소는 에어컨이 턱없이 부족해 초여름에도 러닝셔츠만 입고 기계를 돌리는 인쇄노동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는 “인쇄소는 더워도 안 되고, 추워도 안 된다.”면서 “적정 온도를 맞춰야 인쇄가 잘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 사업장은 에어컨이 부족해 덥다.”고 웃으면서, 내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며 “더 물어볼 게 있으면 에어컨 앞으로 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후덕한 인상만큼이나 가뭄의 단비 같은 배려였다.
잠시 그가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사업장 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작업 공간이 비좁아 동선을 확보하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종이를 나르고 잉크를 투입할 때 편안한 자세로 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또 분진과 잉크 냄새를 없앨 환기시설과 직원들의 건강유지를 위해 ‘정기 검진’ 같은 조치도 절실했다. 특히 유기용제가 피부에 닿으면 말초신경계를 자극해 팔다리 저림, 현기증, 손떨림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그런데도 고무장갑 같은 보호구를 착용한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기초 교육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직원들은 모두 맨손에 마스크조차 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땀까지 비 오듯이 흘린다면 작업능률은 떨어지고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대국전 인쇄기계는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굉음을 낸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업주가 노동자의 건강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경기가 좋지 않다, 영세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건강을 외면하는 것은 인쇄노동자를 서서히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악순환
인쇄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근무한다. 철야근무도 부지기수이며, 2교대로 일하는 사업장도 많다. 무조건 ‘빨리’를 외치는 고객들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한다. 또 색이 잘 먹지 않거나 망점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은 기계 옆에 서서 인쇄되어 나오는 종이를 유심히 살핀다.
“인쇄소는 보통 2교대로 일해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서죠. 인쇄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다시 찍거나 DC(할인)해줘야 하기 때문에 인쇄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무조건 품질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고객들이 있어 정말 난처합니다. 하청 받은 일이 대부분이라서 마진율이 10%도 안 되거든요. 그러한 사정을 이해해줄 고객은 없죠.”
설상가상으로 인쇄소들은 동종업체 간의 경쟁도 심하고, 경기도 좋지 않아 울상이다. 인쇄기계의 성능은 계속 좋아지는 반면 과열경쟁으로 인쇄단가가 바닥을 치는 까닭이다.
“인쇄 단가가 계속 내려가는 게 가장 힘들어요. 인쇄소가 많이 늘다 보니 경쟁이 심하거든요. 인쇄 품질도 다른 데보다 떨어지면 안 돼요. 고객들은 품질이 좋은 곳으로 가버리거든요. 일이 없어 망한 업체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일이 줄어 힘들다고 하는데, 엄연히 얘기하자면 그건 아니고요. 인쇄 기계가 좋아져서 시간당 1만 장 나오던 게 1만 5천 장으로 늘어나니까 일이 줄어든 것처럼 느끼는 거예요.”
인쇄기계 가격도 만만치 않다. 대국전 인쇄기는 8~9억 원 정도. 이정주 공장장의 말로는 인쇄 기계의 90%가 전부‘리스(임대)’라고 한다. 그는 “인쇄는 투자 대비 부가가치가 높지 않다.”면서 “버는 돈이 다 보이니까 봉급을 올려달라고 얘기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김 모 기장은 “일이 많아 철야 있을 때가 좋았다.”면서 옛 시절을 떠올렸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힘들었지만, 돈 많이 버는 사장에게 월급을 올려달라고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지금은 경기도 좋지 않고 작업 물량이 없어 그런 얘기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울해했다.
“IMF 때문에 급격하게 위축됐던 경기가 2000년 들어서면서 한꺼번에 풀리기 시작했어요. 호황이었죠. 그때는 매일 밤을 새우면서 일했던 기억이 나요. 인쇄소를 차리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업체가 많아지면서 임금이 동결됐어요. 노동자 한 명이 벌어들인 돈은 늘었지만, 그 수익은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장이 인쇄기계에 투자해하거나 사장 주머니로 들어간 뒤 임금이 현상 유지된 거예요. 항의라도 하면 사장은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며 협박하기도 했어요. 그 뒤부터 지금까지 인쇄소는 별로 변한 게 없어요. 현 상태라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사라지기 힘들 것 같아요.”
낮은 인쇄단가, 저임금으로 업체들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영세사업장의 몰락은 자명하다. 원청, 하청 구조도 심화될 것이며 인쇄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는 ‘근무시간을 8시간으로 단축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임금 기준을 8시간 노동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 그는 또 “노동조합만이 이윤추구에 급급한 사장들을 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 아니다
“인쇄요? 하고 싶어 시작했겠어요?”
이중고에 빠진 인쇄노동자의 현실을 걱정하다 나온 김 기장의 대답이다.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 하나 떠 있지 않은 서울 하늘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는 표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처음부터 인쇄노동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고 말했다. 3D업종이다 보니 취업이 쉬웠다는 것. 그러나 이들은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기장의 인쇄노동자 인생은 전라도 궁촌을 떠나 무작정 광주에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딱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처럼 농사지으면서 살기 싫어 외삼촌이 사는 곳으로 오게 됐다. 그는 튼튼한 몸 말고는 특별한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외삼촌이 소개해 준 한 출판사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려 6개월 뒤 그는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인쇄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품하거나 눈 깜박일 시간도 없이 일했어요. 대여섯 살 나이가 많은 형들이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켰거든요. 잉크 뚜껑으로 대갈통을 한 대 맞으면 눈물이 핑 돌았죠. 그래도 피곤하다, 힘들다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다들 힘들었으니까요.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한 형이 마스터 제판부터 가르쳐주기 시작했어요. 잉크 다루는 것, 기계 돌리는 것, 제본하는 것, 칼질하는 것 등 이런 거죠.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마워요. 1년 정도 일하다 군대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인쇄업에 뛰어들었어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게 없더라고요.”
이 공장장은 고교 시절 양산 만드는 공장에 취업을 나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인쇄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돈을 벌어야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 인쇄를 배울 때는 선후배 위계질서도 심했고, 언어도 거칠었어요. 기계가 수동이었기 때문에 노동도 힘들었죠. 욕도 많이 먹었고요. 요즘은 달라요. 대학 나온 친구들도 인쇄하겠다고 들어와요. 취직이 힘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다들 똑똑해서 제가 배울 때하고는 많이 달라요. 예전 같았으면 6~7년은 일해야 기장을 했는데, 요즘은 4~5년만 해도 기장을 하거든요. 처음 들어오면 100만 원 정도는 받아요. 3~4개월만 일을 배워 숙달되면 금방 월급이 오릅니다. 힘든 일이지만 우직하게 하다 보면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교대 근무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인쇄소를 빠져나오면서 공장장의 말이 갑자기 생각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인쇄도 예술입니다. 자부심이 있습니다.”
인쇄노동자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땀 흘려 일한다. 하얀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독자들의 눈과 머리의 욕구를 채워준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지라시(전단지)가 찌개 받침대로 사용되더라도 누군가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고, 사색으로 인도하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끄럽고 좁은 사업장에서 손에 잉크를 묻혀가며 일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유구한 역사마저도 기억되지 않고 그냥 흘러가버릴지 모른다. 참으로 소중한 우리이웃이다.
귀마개를 꼭 하세요
인쇄소는 소음이 심해요. 국내 기준으로 8시간 근무에 90데시벨을 초과하지 못하죠. 그러나 인쇄업의 특성상 소음 문제를 개선한다는 것은 사업장을 폐쇄한다는 말과 같아요. 그래서 귀찮더라도 귀마개 등 보호구를 착용하는 게 좋아요.
비전은 있어요
인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로는 기술자들의 수요가 매우 부족해서 머지않아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쇄업은 하향 업종이라고 하네요. 그 이유는 찍어야 할 물량보다 인쇄기계가 많다 보니, 업체들 간에 인쇄비용을 덤핑을 쳐서 제살을 깎아먹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리듬이 깨지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요.
신문박물관
신문박물관은 한국에서 발행된 신문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세계 각국 신문의 특성까지 비교해볼 수 있는 곳이에요. 이 박물관에는 1883년에 창간된 ‘한성순보’에서부터 현재 발행되는 모든 신문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어요. 위치는 세종로 동아미디어 센터 안에 있으며 관람료는 일반 3,000원, 학생 2,000원입니다.
잡지박물관
잡지박물관은 한국 잡지 100년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곳이에요. 이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인 ‘친목의 회보’나 ‘소년’과 같은 희귀본류 창간호 574점을 비롯해 5,000여 종에 이르는 각종 잡지들이 전시돼 있어요. 위치는 청진동 잡지회관 안에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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