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여행과 사색

통영 - 사색 넘치는 고장, 떠나는 자의 즐거움

이동권 2022. 9. 7. 15:14

남망산 조각공원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


항아리 외형처럼 굽은 항구와 넓은 바다, 둥그스레한 공원과 곳곳마다 우뚝 솟아오른 조각상들을 바라본다.

세상은 암갈색 욕망을 불태우며 날뛰고,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고 표독스럽게 외치고 있는데 통영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은 양 푸르디푸른 곡선을 따라 제 맘대로 생겨나 평화롭게 서 있다. 이런 곳에서 어찌 성내고 욕하며 시시비비에 휘말리고 현혹될 수 있을까? 다시 삶의 투쟁 속에 돌아가기 전까지 마음을 다스리면서 고요하고 소박한 사색에 스르르 빠진다.

통영이여. 가만히 놓아주소서. 혼자 있다는 것은 평온한 것. 그리운 눈빛으로 속삭이며 흠씬 달아올랐다가 아름다운 청춘의 초상들을 떠올리며 조용한 참회의 광장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 청명한 바람을 따라 흐르는 한 점 구름이 되어 하늘로, 하늘로 번져 가는 것.....잠시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인생의 길을 떠올린다.

삶은 이렇게도 허망하게 지나가는 것일까. 일렁이는 물결도 거세지다가 차즘 조용해지는 것이 이치인데 세상에는 헛된 절망과 어리석음을 찬양하는 이들이 그리도 많을까. 행여 자신을 성찰하는 용기가 생겨 마술에 걸린 듯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때는 비로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것을.

통영에서의 7일. 언제나 한적한 모퉁이에서 때 이른 점심을 먹고, 고적한 숲 속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마주치고, 진홍빛 작은 벤치에서 잠을 청하며 미련 없이 길을 나선 지 일주일. 떠나는 자의 즐거움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래, 그것은 마음속에 있다고들 했다. 나를 괴롭히고 욕망으로 내모는 그것은 내 뿌리와 육체가 아니라 마음속의 어리석음을 다스리지 못함에 있다고들 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어리석은지도 모르는데 벌써 지쳐 지척도 천리 같다. 윤회의 밤길을 어떻게 걸어갈까.

 

이 충무공 동상
남망산 국제조각공원에 있는 조각상. 꼭 나 같았다.

 

통영 해저터널과 남망산 국제조각공원에 들렸다. 

통영 해저터널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부터 1년 4개월에 걸쳐 만든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이 해저터널은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이며 양쪽 바다를 막고 바다 밑을 파서 만든 콘크리트 터널이다. 터널 양 옆으로는 해저터털 건설과정이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터널 입구에 적힌 용문달양(龍門達陽)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 문'이라는 뜻이다.

남망산 국제조각공원은 미륵도 관광특구 지정과 연계해 조성된 곳이다. 통영시가 통영을 세계적인 해양. 문화. 관광도시로 부상시키기 위해 망산 공원 안 1만 5,700㎡(약 5,000평)의 부지에 조각공원을 만들었다. 조각공원은 세계 유명 조각가 15명의 작품으로 구성됐으며, 바다와 육지가 조화된 자연 풍광과 잘 어우러져 예술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과 삶의 희망을 선사한다.

 

통영에서는 유고한 세월동안 후손들의 깊은 존경을 받아았던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는 통영한산대첩축제가 매년 열린다. 통영시는 임진왜란으로 누란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공훈을 추대하기 위해 정성을 모아 이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2022년 8월, 코로나19 때문에 중지됐던 제61회 통영한산대첩축제가 3년 만에 열렸다.

통영한산대첩축제에서 소개하는 한산도대첩에 관한 글이다.

 

임진왜란은 국운을 건 큰 싸움이었다. 1592년 부산을 침범한 왜병은 경상도를 짓밟은 후파죽지세로 북진했고 선조는 북쪽으로 피난하기에 이르렀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의 몸으로 경상도에 원정을 가 옥포, 당포의 여러 싸움에서 적을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이 무렵 왜군은 칠천도에서 병선과 전력을 정비하고 견내량 해협에 집결해 서해로 통한 대륙진출의 야욕을 꾀하려고 했다. 이를 탐지한 이순신 장군은 견내량은 판국이 좁고 수심이 얕아서 싸우기 어렵고 적이 패할 때 육지로 도망하기 쉬운 곳이므로 큰 바다로 유인해 왜군을 섬멸할 작전을 세웠다. 장군은 일부러 싸우다가 물러나가듯 하여 적선을 한산도 앞 큰 바다로 유인하고 거북선을 선봉으로 학익진을 펼쳐 각종 총통, 각궁시를 쏘았다. 이 장군은 적선 칠십여척을 격파하고 9천여 명을 무찌렀으며 사백여 명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