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여행과 사색

보성녹차밭 - 녹차밭의 정결한 엉킴처럼

이동권 2022. 9. 4. 18:48

보성녹차밭 전경


녹차밭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청풍(淸風)이 길을 안내하는 청자 빛 하늘 아래로는 하얀 깃털 구름이 흐르고, 그 밑으로는 오종종하게 펼쳐진 능선마다 흐르는 냥 마는 양 연둣빛 물결이 연방 넘실거리며 신천지를 연출했다. 정갈하고 아름답게 수 놓인 새색시 치마폭처럼 부드럽지만 아무렇게나 휘갈긴 명필의 붓놀림처럼 힘이 넘쳤던 녹차밭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사색을 불렀다.

보성녹차밭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회색 빛 구름이 밀려왔다.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모처럼 떠난 여행길, 우산 하나 준비할 틈 없이 재촉해 온 여정을 생각하니 지나가는 소나기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나 가지런히 펼쳐진 능선을 따라 갈라지고 메마른 논밭의 호된 고통을 생각하며 맘을 고쳤다. 세상 모든 일이 자신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느끼면 때때로 살아갈 여력을 추스를 수 있듯이, 내 작은 욕심과 이기심을 꾸짖었다. 비여! 온 대지를 시원하게 적셔주소서.

자연은 나를 반기는 건지, 떠미는 건지 아무 말이 없다. 우리 둘은 한 동안 무거운 침묵으로 서로를 응시하다가 자연이 뭔가를 자꾸 나에게 묻는 것 같아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녹차잎


버스는 신록으로 물든 산허리를 달려 초록빛의 물결이 한창인 보성에 도착했다. 보성은 일제강점기부터 차를 재배하던 곳으로 전통 양식을 고스란히 계승한 다원도 많고, 국내 녹차 생산량의 60%를 생산할 정도로 경작 규모도 크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지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난 다원이 바로 대한다원이다. 대한다원은 모 통신회사 CF나 드라마의 배경이 될 만큼 풍광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빌딩 높이만 한 삼나무 숲길이 나를 반겼다. 삼천리 금수강산에는 적송들이 즐비한 금강산이나 굽이굽이 어깨를 맞닿으며 펼쳐진 월정사 전나무 숲길처럼 빼어난 곳이 많지만 이곳 삼나무 숲도 무척 아름다웠다.

삼나무 숲길은 외길이었다. 차가 지나갈 정도로 넉넉한 길이지만 옆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외길. 이 길에 들어서자 숙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제 아무리 허리춤에 꿀주머니를 차고 걸어도 사람일 뿐, 죽음이라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짐승은 날다가 죽고, 기는 짐승은 기다가 죽고, 걷는 짐승은 걷다가 죽어 가는 외길, 이 길을 따라 쉼 없이 마지막을 향해 가는 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숙명이다. 어느 누가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아름답고 값지게 살아야 한다. 

삼나무 숲길을 따라 자연의 거대한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면 녹차의 그윽한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아담한 찻집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녹차과자에서부터 녹차소금에 이르기까지 녹엽으로 만든 갖가지 물품들을 구비한 특산품 판매장이 있다. 상업적인 모습에 이맛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뭐랄까, 남의 집을 방문할 때 과일이라도 한 봉지 준비해 가는 기쁨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보성의 다원들은 모두 개인 사유지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한 곳이다.

녹차 밭으로 올라가는 길목마다 늘어선 벤치와 파라솔이 친구, 연인, 가족과 따뜻한 정을 나누게 한다. 특히 이곳은 하루, 한 주, 한 달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은은한 사색의 장을 마련해준다.

 

지렁이 몸처럼 구부러진 구렁 사이로 난 계단을 따라 차밭으로 올라섰다. 고단한 표정의 아낙네들이 차밭에서 허리 구부린 채 잎을 따고 있었다. 산비탈과 골짜기 틈새 틈새마다 농부의 피땀으로 일궈진 땅을 바라보니 감탄사가 입가를 맴돌았다. 판소리 한가락에 막걸리가 생각났다. 물질이 가치를 말해주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 이런 생각조차도 나약하고 유아적인 생각으로 여기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사람들, 나는 꼭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겠다고 다짐한다. 머루랑 다래랑 먹으며, 이웃집 오솔길 밟으며, 자다 말고 일어나 쏟아지는 별빛 달빛에 사심을 태우며, 막걸리 한 사발에 그리움을 달래면서.

차밭에 올라서서 초록의 영상이 만들어내는 세상을 굽어보니 자연이 나에게 물었던 숙제가 불현듯 떠올랐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살아야 할 길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느 것 하나 정확하게 구분 짓거나 확신할 수 없다. 이렇게 살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봐도 이리저리 나약하게 휩쓸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때는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삶이란 종이 조각에 불과한 약속어음 같은 것일까. 그래서 나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은지 모른다. 다만 사랑할 뿐. 

나는 녹차밭에서 내려오면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우리가 처한 숙명이라는 것은 다정하지도, 친절하기도 않다는 것. 언제나 냉정하고 혹독한 내일이지만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 감싸고 껴안으면서 하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서로 위로하고 정을 나누면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래. 저 녹차밭의 정결한 엉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