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페킨파 감독은 현대 영화에 폭력을 처음으로 대두시킨 장본인이다. 실제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처럼 숨이 멎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처절한 폭력 장면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는 컷은 '폭력 미학의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는 오우삼, 쿠엔틴 타란티노 등 내로라하는 거장 감독들의 영화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영화에는 '폭력'이 하나의 뿌리다. 거기에 수많은 이야기와 반 사회적인 분노가 깃든다. 특히 강자에 대항하는 폭력을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구성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영화에는 선과 악의 구별도, 아주 자그마한 인정과 자비도 없다. 자극적인 폭력과 핏빛 연대기로 권력과 재물에 뒤엉켜 살고 있는 문명화된 현대인들을 비꼰다. 그러면서 사회 부적응자들, 비주류들을 폭력으로 무장시키고 피비린내 나는 전복을 꿈꾼다.
샘 페킨파 감독은 영화 제작사와 자주 충돌을 일으켰다. 이유는 돈 때문이다. 제작사는 기존의 서부극 형식과 이야기에서 벗어나면 흥행에 지장을 준다고 투자를 거부했다. 그의 폭력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역겹다'면서 상영을 거부하는 영화관도 있었다. 지금도 자극적인 그의 영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돈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영화 <가르시아>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영상으로 거침없는 폭력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첫 장면부터 권력의 무분별한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멕시코 깡패 두목 제페가 부하들에게 자신의 딸을 임신시킨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두목은 딸의 인생과 사랑에는 관심조차 없다. 아니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그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망과 욕망이 유린당한 것에 있다.
가르시아 목에 걸린 현상금은 백만 달러다. 제페의 부하 2명과 맥주 바의 주인인 베니가 그를 잡으러 떠난다. 이 부분에서 셈 페킨파는 두 킬러를 동성애자로 설정했다. 또 베니의 애인을 창녀로 그렸다. 1970년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박하게 생각했던 두 대상을 동시에 등장시켜 폭력의 한도를 증가시켰고, 평범한 사람들이 숭상하고 있는 권력과 재물, 그리고 성에 대한 편견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했다.
가르시아를 찾아 나선 이들은 이미 가르시아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백만 달러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살인을 해야 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난 맥주 바 주인 베니는 무덤을 파헤치고 가르시아의 목을 자른다. (감독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망자로 그려 더욱 폭력을 증폭했다.)
베니는 가르시아의 목을 가지고 되돌아간다. 그러나 귀향은 쉽지 않다. 가르시아의 목을 서로 차지하려는 피 비린내 나는 폭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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